소련 방공군을 건설한 원수, 베리야를 직접 처형한 사령관
베리야의 눈을 가리려던 헌병을 제지하며 바티츠키가 말했다. '왜 가리나? 보게 놔둬!'
14세에 붉은 군대에 입대해 기병·참모 장교로 성장했고, 독소전쟁에서는 254소총사단과 73·128소총군단을 지휘하며 드네프르 도하, 벨라루스 해방, 베를린·프라하 공세를 치렀다. 1953년 라브렌티 베리야의 사형 집행을 자청해 직접 방아쇠를 당겼고, 모스크바 방공군구 사령관으로서 소련 영공 방어 체계의 기초를 닦았다. 1966년 방공군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에 올라 1978년까지 12년간 방공군을 전략적 우주방어 체계로 확대하고 바르샤바조약 통합방공을 총괄했으며, 임기 말 방공군 분할 결정에 반대해 스스로 사임했다.
경력 연표
- 1941–1943254소총사단장, 데먄스크 전역 방어전
- 1943–194473소총군단장, 드네프르 도하·체르카시 해방·코르순-셰우첸콥스키 작전
- 1944–1945128소총군단장, 벨라루스·동프로이센·베를린·프라하 공세
- 1950–1953공군 주참모장·공군 부총사령관, 베리야 체포·처형 참여
- 1954–1965모스크바 방공군구 사령관
- 1965–1966소련군 참모총장 제1차장
- 1966–1978방공군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 바르샤바조약 통합방공군 사령관
- 1978–1984국방부 감찰총감단
관련 역사 사건
방공군 총사령관 시절 (1966–1978)
1966년 7월 바티츠키는 소련 방공군(ПВО Страны) 총사령관 겸 국방차관에 임명되었다. 동시에 바르샤바조약 통합군 방공군 사령관도 겸임했다. 1968년 소련 원수로 진급한 그는 12년간 방공군을 지휘하며 지상 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체계를 실전 배치하고 조기경보레이더망과 대공미사일 체계를 대폭 확충해 방공군을 전략적 우주방어 체계로 탈바꿈시켰다. 1970년에는 이집트에 대한 소련군 지원 작전인 '카프카스 작전'에 참여해 소련 방공군 병력을 중동에 처음으로 실전 배치했다. 그러나 1978년 국방부 지도부가 방공군의 상당 부분을 접경 군관구 예하로 이관하는 개편안을 추진하자, 바티츠키는 이에 강력히 반대하며 스스로 사임을 청원했다. 그는 '국가의 방어력을 훼손하는 실험에 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국방부 감찰총감단으로 전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