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셰비키 봉기에 좌파 사회혁명당의 얼굴을 빌려준, 이름뿐인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1917년 10월 21일 밤 라지미르는 두 동료와 함께 군구 사령부에 찾아가 수비대에 대한 최고 권한을 선언했고, 폴코브니코프 대령은 그들의 위원을 인정하지 않으며 법을 어기면 체포하겠다고 답했다.
페트로그라드 군 병원의 위생병으로 출발해 사회혁명당의 병사 선전에 투신한 파벨 라지미르는, 2월 혁명 후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병사부 의장으로 부상했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는 군사혁명위원회에 비당파적 외관을 입히기 위해 좌파 사회혁명당원인 그를 의장으로 앉혔고, 실질적 지휘는 트로츠키가 맡았다. 라지미르 자신이 MRC 규정 초안을 기초했으며, 1918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뒤 남부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으로 보급·위생을 이끌다 이듬해 발진티푸스로 29세에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17 군사·지휘 · 소련 · 군사 · 국방
경력 연표
- ~1911–1917페트로그라드 군 병원 위생병; 사회혁명당원으로 병사 선전 활동
- 1917.3–10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병사부 의장·군사부 부의장
- 1917.10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초대 의장; MRC 규정 초안 기초
- 1917.11–1918내무인민위원부·군사인민위원부 콜레기야 위원
- 1918–1920남부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보급·위생 조직 총괄
관련 역사 사건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와 군사혁명위원회
2월 혁명 뒤 라지미르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병사부 의장과 군사부 부의장을 맡았다. 1917년 10월 무장봉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소비에트 안의 군사혁명위원회 설치를 지지하고, 그 규정안인 「군사혁명위원회에 관한 규정」 초안을 작성했다. 좌파 사회혁명당원이던 라지미르는 위원회국 위원이자 초대 의장이 되었으며, 이 직책은 봉기의 준비와 수행에서 그를 소비에트 내 핵심 인물로 만들었다. 11월에는 내무인민위원부와 군사인민위원부 콜레기야에서 일했다. 자료들은 그의 위원회 활동과 직책을 기록하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위원회의 유일한 실질 지휘자였다고 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