Су(Sukhoi) 설계국의 창립자, Su-7, Su-24, Su-27의 아버지
김나지움 시절 고멜 상공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보고 소년 파벨은 숨이 멎는 듯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락방으로 올라가 모형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새가 아니라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벨라루스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투폴레프의 제자로 항공에 입문한 소련의 항공기 설계자. 1939년 수호이 설계국(OKB-51)을 창립해 Su-2 경폭격기를 전력화했고, 스탈린의 총애를 잃어 1949년 설계국이 해체되는 시련을 겪었다. 스탈린 사후인 1953년 재건된 OKB에서 Su-7 전폭기(1960년대 소련 전술항공의 주력), Su-9·Su-15 요격기, 가변익 Su-17·Su-24 등 냉전기 소련 공군의 중추 기종들을 연이어 배출했다. 기술적 예측력으로 동시대 설계자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착수한 Su-27은 세계 최상급 전투기로 완성되었다. 두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레닌상·스탈린상을 수상했고 1958년부터 1974년까지 소련 최고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5–1920모스크바 공과대학 입학, 징집으로 중단 → 포병 장교, 제대
- 1921–1925모스크바 고등기술학교(MVTU) 복학, 투폴레프 지도하에 졸업
- 1925–1938TsAGI·투폴레프 설계국 — I-4, ANT-25, ANT-37bis 설계 참여
- 1939–1949수호이 설계국(OKB) 창립 — Su-2, Su-6(스탈린상), Su-9 제트기
- 1949–1953OKB 해체; 투폴레프 설계국 부수석 설계자
- 1953–1975OKB-51 재건 — Su-7, Su-9, Su-15, Su-17, Su-24, Su-27 착수
- 1958–1974소련 최고회의 대의원
관련 역사 사건
설계의 자동화를 향한 마지막 도박
수호이가 말년에 걸었던 판단 중 가장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은 설계 자체보다 그 설계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1972년, 그는 다른 항공 설계국 지도자들보다 훨씬 앞서 소련 과학원 전산센터(ВЦ АН СССР)에 자신의 제품 설계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협력을 요청했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 연구자와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집단이 결성되었고, 몇 해에 걸쳐 해당 자동설계시스템(САПР)의 1단계를 개발해 실제로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기체 설계자로서 이름을 남긴 인물이 조직 차원의 계산·설계 방법론 전환을 먼저 요구한 사례로, 그가 남긴 기종들의 계보와는 별개의 축이다.
이 시기 수호이는 제2차 세계대전 전선에서 앓은 폐결핵의 후유증이 악화되어 산소통을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1975년 9월 15일 모스크바 근교의 요양소 바르비하에서 사망했고,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 7구역에 안장되었다. 설계 자동화 작업이 결실을 보는 동안에도 그의 건강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