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표도로비치 유딘

Павел Фёдорович Юдин
소련 러시아 1899–1968 ○ 자연사

스탈린주의 철학 정통을 세우고 말년에 소련 문화사의 토대를 잉태한 철학자 외교관

「유딘과 미틴은 하늘의 별을 딸 재목은 아니지만, 기술적으로는 일을 잘 안다」 — 스탈린, 두 철학자를 평가하며

1930년 '3인의 편지'로 데보린 학파를 숙청한 철학자. 마오쩌둥 『선집』을 편집하고 주중 대사로 중소 분열을 목격했다. 말년에 비정통파 문화사학자들을 보호해 소련 문화사 연구의 토대를 닦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중국 시절: 마오의 편집자에서 주중 대사까지 (1950–1959)

유딘의 중국 인연은 1950년 7월, 마오쩌둥이 스탈린에게 '마르크스주의 교육을 받은 인물'을 보내 『선집』 편집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스탈린은 유딘을 직접 지목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유딘은 번역팀의 작업 속도가 더뎌지자 중국 각지에서 정치·이론 강연에 나섰다. 류샤오치가 주재한 베이징 강연 개막식에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를 발표했고, 이후 산둥·난징·상하이·항저우·창사·광저우·한커우·시안·옌안·선양·하얼빈을 순회했다. 강연 초고는 『런민르바오』에 연재되었다. 귀국 직전 마오의 「실천론」 러시아어 번역을 검토했고, 외국인 독자에게 거슬릴 수 있는 표현을 일부 줄이는 데 동의를 얻었다. 스탈린은 이 글을 『볼셰비키』와 『프라우다』에 싣도록 지시했고, 1951년 소련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1953년 12월 주중 대사로 정식 부임한 유딘은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 노선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며 마오와의 관계를 중시했다. 1957년 마오는 유딘에게 '모스크바 회의에서 흐루쇼프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유딘은 이 메시지를 모스크바에 보고했다. 그러나 1959년 중소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자 흐루쇼프는 유딘을 소환했다. 훗날 흐루쇼프는 회고록에서 '유딘이 마오를 자극해 반소 인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고, 장기간의 철학 대화를 통해 유딘을 신뢰했던 마오 역시 그의 소환을 중소 갈등의 전조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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