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미하일로비치 제르노프

Павел Михайлович Зер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64 ○ 심장질환

핵무기 설계국 KB-11의 초대 소장이자 소련 원자폭탄의 행정적 기반을 닦은 군수산업 조직자

베리야가 원자폭탄 기한을 못 맞춘다고 압박하자, 제르노프는 "과학자들이 게으른 게 아니라 문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모스크바 바우만 공과대학에서 내연기관을 전공한 공학자 출신 군수산업 조직가. 1946년 4월 KB-11(아르자마스-16)의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어 폐쇄도시 건설과 설계국 운영의 행정적 기반을 닦았고, 수석설계자 율리 하리톤과 함께 1949년 첫 소련 원자폭탄 RDS-1을 성공시켰다. 전쟁 중에는 전차공업 부인민위원으로서 공장 대피와 생산 재개를 지휘했고, 이후 중형기계공업부 차관으로 핵무기 산업 전반을 관장하며 두 차례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KB-11의 설립과 아르자마스-16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의 원자폭탄 사업은 연구소 건설과 폐쇄된 산업도시의 조성을 포함하는 대규모 조직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물리학자 이고리 쿠르차토프, 설계자 율리 하리톤, 파벨 제르노프 장군은 적절한 연구 부지를 함께 물색했고, 니즈니노브고로드주 사로프 인근의 옛 수도원 지역을 선택했다. 1946년 4월 13일 설계국 제11호(KB-11)가 설립되었으며, 하리톤은 수석설계자, 제르노프는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시설은 처음에는 아르자마스-60으로 불렸으나, 숫자가 위치를 드러낼 수 있다는 우려로 곧 아르자마스-16으로 바뀌었다. 연구는 1947년에 시작되었고, 1948년에는 엄격한 보안 체계 아래 외부와 차단되었다. 제르노프의 역할은 과학적 설계 자체라기보다 연구·설계 조직과 비밀도시를 세우는 국가 사업의 행정적 지도에 있었다. 이 시설의 노동과 생활은 폐쇄체제의 특권과 통제라는 양면성을 지녔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폐쇄도시 건설에는 굴라크 수용소의 강제노동이 광범위하게 동원되었고, 아르자마스-16의 연구자와 가족들은 다른 소련 주민보다 나은 주거·식량·의료 접근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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