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필리프의 손자로 1848년 왕위에 오를 뻔했다가 평생 오를레앙파 왕위 요구자로 산 파리 백작
1838년 파리에서 루이 필리프의 맏아들 오를레앙 공작과 엘렌 사이에 태어나, 1842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1848년 2월 할아버지가 물러난 날 어머니를 섭정으로 하여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가족은 망명했다. 이때부터 오를레앙파의 왕위 요구자가 되었다. 미국 남북전쟁 때 1861~1862년 북군 대위로 매클렐런 장군의 참모를 지냈고, 뒤에 『미국 남북전쟁사』를 썼다. 1873년 왕정복고를 기대해 샹보르 백작에게 왕위 요구를 양보했고, 1883년 샹보르 백작이 죽자 대부분의 왕당파가 그를 「필리프 7세」로 받들었다. 1886년 다시 추방되어 영국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파리 백작 · 루이 필리프 알베르 도를레앙 · 필리프 7세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42왕위 계승자
- 18482월 혁명, 망명
- 1848–1894오를레앙파 왕위 요구자
- 1861–1862북군 대위, 매클렐런 장군 참모
- 1873샹보르 백작에게 왕위 요구 양보
- 1883–1894「필리프 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