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산주의 노선을 관리한 당 국제부장
1984년, 포노마료프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 국제공산주의운동에 미칠 파장을 경고했던 자글라딘의 메모를 금고에서 꺼내며 말했다. "당신이 옳았어, 바딤 발렌티노비치!" 그리고는 다시 금고에 넣었다.
1919년 14세로 입당한 소비에트 정치가이자 사상가. 흐루쇼프 해빙기부터 페레스트로이카 직전까지 30년 넘게 중앙위 국제부장을 지내며 세계 공산당 및 민족해방운동과의 관계를 총괄했다. 1961년 중앙위 서기, 1972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승격해 소련 외교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활동했다. 외교부가 국가 대 국가 외교를 담당했다면, 포노마료프는 당 대 당 외교와 이념 네트워크를 주도하며 소련 공산당의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했다. 브레즈네프 시대 지도부 안에서 드문 반스탈린주의자였으며, 1986년 고르바초프의 개혁 속에 31년 만에 퇴장했다.
경력 연표
- 1930s–1943코민테른 기관에서 활동, 국제공산주의 네트워크 실무를 익힘
- 1943–1955코민테른 해산 뒤 중앙위 국제 라인에서 각국 공산당 관계 관리
- 1955–1986중앙위 국제부장, 세계 공산당과 민족해방운동 지원 노선 관리
- 1960s–1970s중소분쟁과 유로코뮤니즘 속에서 모스크바의 정통 노선을 방어
- 1986 이후고르바초프의 외교·당 개혁 속에서 퇴장
관련 역사 사건
스탈린 교과서를 폐기한 당의 역사 편찬자
국제부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포노마료프는 소비에트 역사학에서도 중추적 인물이었다. 1930년대 적색교수양성소 부소장을 지낸 그는,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이후 《소련공산당사》 새 공식 교과서 편찬팀을 이끌었다. 1938년 스탈린의 《볼셰비키당사 소사(小史)》를 대체한 이 책은 1959년 초판부터 1985년까지 일곱 차례 개정되며 소련 전역의 당 교육을 지배했다. 1962년 12월 전소련역사학자대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은 소비에트 역사학의 분수령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11권짜리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소련사》(1963~1980)의 책임편집자, 다권본 《소련공산당사》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무실 벽에는 스탈린 초상화가 끝내 걸려 있었다. 브레즈네프 시대 지도부 안에서도 그는 스탈린 부분 복권 시도를 저지하는 대표적 반(反)스탈린주의자로 통했다. 서유럽 공산당,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 당이 모스크바에서 이탈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