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레 카라조르제비치

Pavle Karađorđević

전쟁을 피하려다 추축국의 압박에 밀린 섭정

1941년 3월 25일 삼국동맹 가입 이틀 뒤 군부 쿠데타로 섭정직에서 쫓겨났다.

파블레 카라조르제비치는 알렉산다르 1세 암살 뒤 미성년 페타르 2세를 대신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통치한 섭정공이었다. 그는 중앙집권 체제의 유산을 완화하고 크로아티아 민족운동과 타협하려 했으며, 1939년 츠베트코비치-마체크 협정으로 크로아티아 바노비나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유럽 전쟁이 확대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실질적 보장이 약해지자 중립을 지키려던 외교는 독일 압력에 대한 양보로 기울었고, 1941년 삼국동맹 가입은 군부 쿠데타와 그의 실각을 불렀다. 그는 전후 망명 생활을 하다 1976년 사망했고, 2011년 세르비아 법원에서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크로아티아 자치와 추축국 압박 사이

1934년 알렉산다르 1세가 암살된 뒤 섭정이 된 파블레는 왕의 중앙집권 통치를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크로아티아 정치세력과 타협을 모색했다. 1939년 2월 밀란 스토야디노비치 총리를 해임하고 드라기샤 츠베트코비치를 후임으로 세워 크로아티아 농민당 지도자 블라드코 마체크와 협상하게 했다. 같은 해 8월 체결된 츠베트코비치-마체크 협정은 크로아티아 바노비나에 상당한 자치를 부여했다. 이 타협은 세르비아계 다수에게 크로아티아에 지나친 권한을 준 것으로, 일부 크로아티아 분리주의자에게는 자치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럽 전쟁이 다가오자 파블레는 유고슬라비아의 군사적 취약성을 고려해 중립을 유지하려 했다. 1941년 3월 4일 베르히테스가덴에서 히틀러를 만났을 때 독일군의 유고슬라비아 영토 통과 요구는 제기되지 않았다. 파블레는 삼국동맹 가입 대신 불가침 조약과 우호 선언을 제안했지만, 히틀러는 가입을 압박했다. 3월 25일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빈에서 삼국동맹에 가입했다. 그 문서는 독일이 유고슬라비아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고, 추축국이 영토 통과 허가나 군사 원조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틀 뒤 두샨 시모비치 장군이 이끈 군부 쿠데타로 섭정 체제가 무너지고 페타르 2세가 친정했다. 파블레는 권력을 넘겼으며, 독일·이탈리아의 침공은 4월 6일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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