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이바노비치 스모로딘

Пётр Иванович Смород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러시아 1897–1939 ✕ 처형

콤소몰의 대중적 기반을 다지고 '배움'을 기치로 내건 노동자 출신 제1서기

제5차 콤소몰 대회에서 한 대의원이 스모로딘을 "노동청년의 지도자"로 전국에 선전하자고 제안하자, 그는 단상에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무슨 까닭에 나를 성상(이콘)으로 만들려는 거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4세에 페트로그라드 외과기구 공장의 견습공이 되었고, 1917년 5월 볼셰비키에 입당하여 10월 무장봉기에 직접 참가했다. 페트로그라드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SSRM) 창설을 주도했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콤소몰 중앙위원회 제1서기로서 NEP 시기 청년 조직의 대중적 기반을 다지고 '배움'을 콤소몰의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이후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 당 지역위원회 서기를 역임했고, NKVD 트로이카 위원으로 대숙청에 가담했으나 1938년 '인민의 적'으로 체포되어 1939년 총살당했으며 1954년 사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콤소몰 지도부와 당 지역조직에서의 활동

스모로딘은 1920년부터 콤소몰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페트로그라드 시위원회 서기였으며, 1921년부터 1924년까지 러시아 공산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제1서기(당시 명칭은 총서기)를 맡았다. 이 시기 콤소몰은 신경제정책 아래 청년층을 대상으로 정치 계몽 활동을 벌였고, 조직의 강령은 공산주의 사상의 확산과 정치교육뿐 아니라 경제·국가 건설 참여, 소비에트 권력 방위를 목표로 내세웠다. 1924년 7월 동맹은 레닌의 이름을 붙여 러시아 레닌주의 공산주의청년동맹으로 개칭했다.

1928년 공산주의 아카데미의 마르크스주의 과정을 마친 뒤 그는 레닌그라드 당 조직에서 구역위원회 간부와 서기를 지냈다. 1928년 9월부터 1929년 12월까지 바실레오스트롭스키 구역위원회 조직부장을 맡고, 1929년 12월부터 1931년 12월까지 같은 구역의 제1서기였다. 이어 1931년 12월부터 1936년 6월까지 비보르크 구역위원회, 1936년 6월부터 1937년 8월까지 모스크바 구역위원회 제1서기를 역임했다. 1937년 레닌그라드 주위원회 제2서기를 거쳐 9월부터 스탈린그라드 주위원회 제1서기 대행 및 제1서기로 일했다. 1937년 12월 소련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38년 6월에는 스탈린그라드 시위원회 제1서기로 임명되었다. 1937년 NKVD 명령 00447호에 따라 설치된 특별 트로이카의 위원으로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주에서 탄압에 적극 가담했다. 당 중앙위원회는 1938년 6월 그를 주위원회 제1서기직에서 해임했고, 8월에는 당에서 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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