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소몰의 대중적 기반을 다지고 '배움'을 기치로 내건 노동자 출신 제1서기
제5차 콤소몰 대회에서 한 대의원이 스모로딘을 "노동청년의 지도자"로 전국에 선전하자고 제안하자, 그는 단상에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무슨 까닭에 나를 성상(이콘)으로 만들려는 거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4세에 페트로그라드 외과기구 공장의 견습공이 되었고, 1917년 5월 볼셰비키에 입당하여 10월 무장봉기에 직접 참가했다. 페트로그라드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SSRM) 창설을 주도했고,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콤소몰 중앙위원회 제1서기로서 NEP 시기 청년 조직의 대중적 기반을 다지고 '배움'을 콤소몰의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이후 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 당 지역위원회 서기를 역임했고, NKVD 트로이카 위원으로 대숙청에 가담했으나 1938년 '인민의 적'으로 체포되어 1939년 총살당했으며 1954년 사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911–1917페트로그라드 외과기구 공장 견습공·노동자
- 1917페트로그라드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SSRM) 공동 창설자
- 1920–1921페트로그라드 콤소몰 시위원회 서기
- 1921–1924콤소몰(РКСМ)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28–1937레닌그라드 바실레오스트롭스키·비보르크·모스크바 구당위원회 서기
- 1937레닌그라드 주당위원회 제2서기
- 1937–1938스탈린그라드 주당위원회 제1서기
- 1938스탈린그라드 시당위원회 제1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