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에서 자유주의를 거쳐 반볼셰비키 보수로: 러시아 지식인의 궤적을 그린 사상가
바실리 슐긴이 회고한 장면: 「그러면 자신도 진압되어야 했나?」 묻자, 스트루베는 흰 수염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 「그렇소! 나부터! 혁명가가 머리를 들면 — 탁! — 개머리판으로 두개골을!」
합법적 마르크스주의로 출발해 해방동맹 공동 창립과 『이정표』(1909) 참여를 거쳐 백군 이념가로 귀결된 사상가. RSDLP 첫 선언문(1898)을 썼고, 망명 중에도 반볼셰비키 저술을 이어갔다.
경력 연표
- 1894『러시아 경제발전 비판』 출간, 합법적 마르크스주의 기수로 부상
- 1898제1차 RSDLP 대회 선언문 기초
- 1902–05『해방』지 편집, 해방동맹 공동 창립
- 1905–15카데트 중앙위원, 『이정표』(1909) 참여
- 1907제2국가두마 의원(페테르부르크)
- 1917러시아과학원 정회원, 임시정부 외무부 경제국장
- 1918–20백군 이념가, 데니킨·브란겔 정부 외교 담당
- 1921–44망명 언론인·학자, 『르네상스』 등 편집
관련 역사 사건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에서 관념론으로
스트루베는 1890년대 러시아에서 이른바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대표자였다. 차르 체제하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학술 저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한 이 흐름은, 자본주의의 진보성을 옹호하고 나로드니키의 농촌 공동체에 기댄 사회주의를 공격했다. 1894년 출간된 그의 첫 저서 『러시아 경제발전 비판』은 "우리의 무문화를 인정하고 자본주의에 도제로 들어가자"는 선언으로 끝맺으며,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일종의 신조가 되었다. 이듬해 그는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내는 익명의 공개서한을 작성해 입헌제를 요구했고, 1898년에는 제1차 RSDLP 대회 선언문을 기초했다. 이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최초 공식 문서였다.
그러나 바로 그 무렵 스트루베는 이미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토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1899년 독일에서 발표한 「마르크스 사회발전 이론」에서 그는 사회혁명의 필연성이라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사회주의는, 솔직히 말해, 내게 어떤 감정도 일으킨 적이 없고 매력도 없었다. 나는 순전히 이성의 경로를 통해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1902년 그가 주도한 논문집 『관념론의 제 문제』는 신칸트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전제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이는 훗날 『이정표』(1909)로 이어질 러시아 자유주의 보수의 철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레닌을 비롯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스트루베의 이탈은 배신으로 간주되었으나, 그 스스로는 이를 사회민주주의가 도달할 수 없는 정치적 자유의 토대를 모색한 이론적 전환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