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드미트리예비치 스뱌토폴크-미르스키

Пётр Дмитриевич Святополк-Мирский
러시아 제국 제정·백색진영 러시아 러시아 1857–1914 ○ 자연사

"신뢰의 시대"를 약속했으나 피의 일요일로 끝난 비운의 내무장관

1904년 9월 16일 내무부 관료들 앞에서: "행정의 성과는 공공기관과 국민에 대한 진실로 호의적이며 신뢰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이 한 마디가 '신뢰의 시대'를 열었다.

플레베 암살 후 내무장관에 올라 '신뢰의 시대'를 선언하고 검열 완화·유배자 사면·젬스트보 대회 허용으로 자유주의 여론에 호응했으나, 국무회의에 선출직 대표를 도입하려던 개혁안은 니콜라이 2세에게 거부당했다. 1905년 1월, 가폰 신부의 평화 청원 행진에 대한 그의 무대응은 피의 일요일 학살로 귀결됐고, 사흘 뒤 사임했다. 정직하고 선의에 찼으나 정치적 결단력이 부족했던 그는 개혁과 반동 사이에 끼어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인물로 남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내무장관 재임과 1904년 개혁 구상

1904년 8월 뱌체슬라프 폰 플레베가 암살된 뒤 내무장관이 된 스뱌토폴크-미르스키는 지방 젬스트보 대표들이 정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허용하고 직접 참석했다. 그는 회의의 결의와 함께 국무회의에 선출직 대표를 포함하는 개혁안을 니콜라이 2세에게 제출했다. 구상에는 구교도에 대한 제한 완화, 언론·종교의 자유 확대, 지방 자치 강화, 비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불필요한 제한 철폐도 포함됐다. 그러나 1904년 12월 황제는 국무회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그의 구상을 거부했다. 이 조치는 제정 체제 안에서 제한적인 정치 개혁을 추진한 시도였지만, 황제의 결정권을 넘어서는 헌정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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