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시대"를 약속했으나 피의 일요일로 끝난 비운의 내무장관
1904년 9월 16일 내무부 관료들 앞에서: "행정의 성과는 공공기관과 국민에 대한 진실로 호의적이며 신뢰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이 한 마디가 '신뢰의 시대'를 열었다.
플레베 암살 후 내무장관에 올라 '신뢰의 시대'를 선언하고 검열 완화·유배자 사면·젬스트보 대회 허용으로 자유주의 여론에 호응했으나, 국무회의에 선출직 대표를 도입하려던 개혁안은 니콜라이 2세에게 거부당했다. 1905년 1월, 가폰 신부의 평화 청원 행진에 대한 그의 무대응은 피의 일요일 학살로 귀결됐고, 사흘 뒤 사임했다. 정직하고 선의에 찼으나 정치적 결단력이 부족했던 그는 개혁과 반동 사이에 끼어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인물로 남았다.
경력 연표
- 1895–1897펜자 주지사
- 1897–1900예카테리노슬라프 주지사
- 1900–1902내무차관 겸 헌병단장
- 1902–1904빌나·코브노·그로드노 총독
- 1904.8–1905.1내무장관, '신뢰의 시대'
- 1905.1피의 일요일 후 사임, 정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