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2세 처형 결정에 참여한 볼셰비키 외교관: 바르샤바에서 암살당하다
1927년 6월 7일 아침, 바르샤바 중앙역. 보이코프가 아르카디 로젠골츠를 마중 나갔다가 백계 청년 보리스 코베르다가 달려들어 권총을 쏘았다. 체포된 코베르다는 말했다: "나는 러시아를 위해, 수백만 인민을 위해 복수했다."
보이코프는 우크라이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0대에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소련 외교관이다. 1918년 우랄 소비에트 공급위원으로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의 처형을 결정한 특별회의에 참여했으며, 시신 훼손용 황산 공급 명령에 서명했다. 1924년부터 주폴란드 소련 전권대표로 바르샤바에서 외교 임무를 수행했고, 1927년 6월 백계 러시아인 청년 보리스 코베르다의 총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그의 암살은 소련-폴란드 관계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소련 당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모스크바에서 전 제국 귀족 20명을 즉결 처형했다.
경력 연표
- 1903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입당, 멘셰비키
- 1906얄타 경찰서장 겨냥 폭탄 테러 기도 실패, 도피
- 1907–1917제네바 망명, 제네바 대학교 수학·화학 전공, 멘셰비키-국제주의파 활동
- 1917.8볼셰비키 합류, 예카테린부르크 소비에트 및 군사혁명위원회 참여
- 1918.1–12우랄 지역 소비에트 공급위원
- 1918.7우랄 소비에트 특별회의에서 니콜라이 2세 처형 결정에 참여, 황산 공급 서명
- 1919–1920식량인민위원부 분배국 근무, 첸트로소유스(중앙소비자협동조합) 부의장
- 1920–1921대외무역인민위원부 이사, 수출위원회 참여
- 1924–1927주폴란드 소련 전권대표(전권대사)
- 1927.6.7바르샤바 중앙역에서 백계 망명 청년 보리스 코베르다에게 암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