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말을 만든 체코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말년에 리흐타는 예측 연구팀을 만들려 했으며, 자신의 말로는 "우리를 정치적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회를 공식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로, '과학기술혁명' 개념을 정립하고 60인의 공동연구를 이끌어 『갈림길에 선 문명』(1966)을 출간했다. 이 저작은 중앙집권적 계획은 과학기술 시대에 낡은 방식이라 주장하며 프라하의 봄 행동강령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그가 만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는 1968년 개혁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바르샤바조약군 침공 이후 리흐타는 후사크의 '정상화'에 순응하여 철학·사회학 연구소장으로 동료 학자들의 숙청을 주도했고, 1977년에는 헌장 77과 얀 파토치카를 공격하는 언론 캠페인에 가담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4게슈타포 체포, 판크라츠·테레진 수감
- 1945–1953카렐대학교 철학부·자연과학부 수학, PhDr. 취득
- 1949–1954『트보르바』 부편집장, 『루데 프라보』 편집위원
- 1954–1966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 연구원
- 1966–1968과학기술혁명 학제간 연구팀장, 『갈림길에 선 문명』 출간
- 1967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선출
- 1969–1982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철학·사회학 연구소장
- 1972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아카데미크) 선출
관련 역사 사건
정상화기 연구소 운영과 학술적 재편
1968년 이후 리흐타는 정상화 체제에 합류했고 1970년 체코슬로바키아 과학아카데미에 새로 설립된 철학·사회학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연구소와 철학연구소, 과학이론실이 폐지되고 기존 직원 일부가 새 연구소에 선별적으로 채용되었다. 역사가 미하엘 보르지셰크는 리흐타의 소장직이 기존 조직의 연속성을 가장하는 데 기여했지만, 실제로는 대규모의 계획된 숙청이었다고 평가한다. 리흐타는 1970년대에 소련 및 다른 사회주의권 과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했고, 『인간·과학·기술』(1974)과 『사회주의와 과학』(1983) 등을 냈다. 이 시기 그는 과학기술혁명 아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쟁이 사회주의의 승리로 결정되었다고 보았으며, 서구의 후기산업사회론을 반박하는 데 주력했다. 체코 철학자 사전도 정상화 초기 그가 1960년대의 성과를 억압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