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밀하우스 닉슨

Richard Milhous Nixon
미국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미국 미국 1913–1994 ○ 뇌졸중

데탕트로 소련과 핵무기 제한의 틀을 열고 워터게이트로 무너진 유일한 사임 대통령

1959년 모스크바 미국 박람회의 모형 주방 앞에서, 닉슨은 흐루쇼프를 향해 "우리도 색채 텔레비전에서는 앞서 있다"고 응수하며 즉흥적인 체제 논쟁을 벌였다.

반공 조사로 전국적 명성을 얻은 하원의원에서 부통령을 거쳐, 두 차례의 낙선을 딛고 1968년 대통령에 오른 집요한 정치인이었다. 냉전의 대표적 반공 인사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소련 및 중국과의 데탕트를 주도하여, 1972년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브레즈네프와 ABM 조약 및 SALT I 잠정협정에 서명했다. 초강대국 간 핵무기 제한의 첫 국제법적 틀이었다. 베트남전을 '명예로운 평화'로 종결시키고 중국 방문으로 미중 관계의 문을 열었으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1974년 8월 9일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임한 대통령이 되었다. 퇴임 후 외교 원로로서 이미지를 회복했으나, 그의 유산은 데탕트의 성취와 대통령직을 무너뜨린 불법 사이에 영원히 걸려 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52년 정치자금 파동과 체커스 연설

1952년 대선에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에 지명된 닉슨은 곧 정치자금 파동에 휘말렸다. 그의 후원자들이 정치 활동 경비를 보전하려고 조성한 기금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가 상원에서 공직 청렴을 강조해 온 점이 오히려 그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사퇴 압력이 커지자 닉슨은 선거 유세를 중단하고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 1952년 9월 23일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약 30분간 전국 연설을 했다. 그는 기금이 비밀스럽지 않았고 후원자들이 특혜를 받지 않았으며 자신이 개인적 용도로 쓴 돈이 없다고 변호했고, 시청자들이 공화당 전국위원회에 연락해 자신의 거취를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반드시 남기겠다고 한 선물로, 딸이 체커스라는 이름을 붙인 코커 스패니얼 강아지를 언급했는데, 이 대목에서 연설의 통칭이 유래했다. 이 방송은 약 6천만 명이 시청한 당시 최대 규모의 텔레비전 방송이었고 공화당 전국위원회에는 지지 전보와 전화가 쏟아졌다. 아이젠하워는 그를 후보 명단에 남겼고 두 사람은 그해 11월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 연설은 정치인이 텔레비전을 통해 유권자에게 직접 호소한 초기 사례로 평가되며, 이후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 연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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