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 헤이키 뤼티

Risto Ryti
핀란드 국가기관 자유주의·공화주의 핀란드 핀란드 1889–1956 ○ 전쟁책임 10년형, 1949년 사면

겨울전쟁 중 총리로 등장하여 모스크바 평화 조약을 협상한 핀란드 대통령

이 재판은 익살극이다. 실제 기소자는 핀란드 국가가 아니라 한 초강대국의 정부이며, 실제 피고는 핀란드 국민이다.

겨울전쟁 발발 직후 핀란드 총리가 되어 소련이 인정을 거부한 합법 정부를 이끌었고, 1940년 3월 모스크바 평화 조약을 협상했다. 핀란드은행 총재 출신의 경제 전문가로 대통령에 올랐으며, 계속전쟁에서 독일과 협력했으나 1944년 뤼티-리벤트로프 협정을 개인 자격으로 맺고 사임해 만네르헤임의 대소 강화를 열었다. 전후 전쟁 책임 재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49년 사면되었고, 오늘날 핀란드에서는 조국을 위해 희생한 지도자로 기억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4년의 독일과의 약속과 사임

1944년 6월 소련군의 대공세로 핀란드의 군사·정치 상황이 위기에 놓였다.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가 핀란드를 방문해 계속 싸우겠다는 약속을 요구하고 군사 원조를 제안했다. 핀란드 정부 안에서는 소련의 협상 제안에 응답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고, 리스토 뤼티와 외무장관 배이뇌 탄네르는 응답을 지지했으나 소수였다. 만네르헤임의 압박 아래 뤼티는 의회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의 약속 형식으로 전투를 계속하겠다고 서명했다. 이 약속은 독일의 군사 원조가 이어지도록 했고, 핀란드 정부는 이를 국가평의회 회의에서 다루는 타협을 했다. 7월 중순 군사 상황이 안정되자 대통령 교체 절차가 시작되었고, 뤼티는 사임서를 냈다. 의회는 1944년 8월 특별법으로 만네르헤임을 대통령에 임명했다. 이 과정은 뤼티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독일의 원조를 필요로 한 상황, 정부 내 분열, 만네르헤임의 영향력이 함께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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