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전 경험과 구식 지휘체계의 긴장을 드러낸 프랑스 장군
1914년 크리스마스 밤, 부상당한 채 테트드포 정상에서 숫적으로 우세한 독일군을 상대로 중대를 지휘하며 버텨 두 차례 표창을 받았다.
로베르 투숑은 산악전과 보병 교육으로 명성을 쌓은 프랑스 장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 경험과 알프스 부대 지휘를 바탕으로 승진했다. 1940년 5월 독일군의 돌파 뒤 제6군을 지휘하며 마지노선에서 이동한 부대들을 엔강 방어선에 급히 배치했고, 샤를 드골의 제4기갑사단도 몽코르네 반격에 투입했다. 그러나 전차부대는 충분히 통합되거나 지원되지 못했고, 그의 군은 전선의 틈을 막은 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휴전 뒤 퇴역한 그는 비시의 국가평의회와 리옹 국가재판소에 참여해 군인으로서의 경력과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협력이 겹치는 유산을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9–1901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생도
- 1914–1918알프스 엽병 대대 지휘,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다수 표창
- 1928–1930제159보병연대 지휘관, 브리앙송
- 1932–1935생마상 보병·전차 응용학교 교장
- 1938–1939리옹 군정장관 및 제14군관구 사령관
- 1939.11–1940.02제23군단 사령관
- 1940.02–07제6군 사령관, 엔강 방어와 몽코르네 반격 시기
- 1941–1942비시 국가평의회 위원 및 리옹 국가재판소 판사
관련 역사 사건
비시 정권 아래의 활동
1940년 8월 현역에서 물러난 뒤 투숑은 비시 정권의 공직을 맡았다. 1941년 1월 페탱이 그를 국가평의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국가평의회는 정권이 설치한 자문기구였으며, 공적 회의 없이 제한된 임무의 위원회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점차 권한을 잃었다. 같은 해 투숑은 비시 정권이 설치한 예외법원인 리옹 국가재판소 분과의 판사로 임명되었다. 이 재판소는 관할권이 넓고 통상적인 피고인 보호 절차가 약화된 법정이었다. 따라서 그의 비시 시기 경력은 단순히 군 경력을 마친 것에 그치지 않고, 정권의 자문기구와 예외적 사법기구에 참여한 이력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