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업화의 연대기를 7권으로 쌓은 영국의 경제사가
마지막 권에서 그는 썼다: "소비에트 역사에 대한 나의 견해는 변했지만… 역사의 세부가 선입견과 충돌할 때는 후자가 양보해야 한다… 나는 좌파로 남아 있으며, 더 나은 사회의 조직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영국의 경제사가. E. H. 카와 함께 『계획경제의 기초』를 집필했고, 카의 작업을 이어받아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업화』 전7권을 완성했다. 휘트크로프트와 공저한 『기아의 해』(2004)에서 구소련 기록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1932–1933년 기근 사망자를 550만~650만 명으로 추산했으며, 기근을 계획된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조달 우선 정책·흉작·지도부의 뒤늦은 대응이 결합된 결과로 설명했다. 젊은 시절 영국 공산당원이었으나 1956년 헝가리 침공 후 탈당했고, 좌파로서 "더 나은 사회의 조직은 가능하다"는 신념을 평생 지켰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3–1946영국 공군 통신병 복무
- 1950런던대 SSEES 학사
- 1954버밍엄대 박사 (소비에트 재정)
- 1954–1956글래스고대 소비에트연구소 강사
- 1956–1965버밍엄대 연구원·강사·선임강사
- 1963–1979버밍엄대 CREES 초대 소장
- 1965–1988버밍엄대 소비에트경제학 교수
- 1988정년퇴임, 명예교수
관련 역사 사건
소련 공업화 연구와 사료에 따른 역사 서술
데이비스는 E. H. 카와 함께 소련 계획경제의 기원을 다룬 뒤, 카가 1920년대 말에서 작업을 멈추자 1930년대를 다루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공업화』 연작을 이어 썼다. 1980년부터 2018년까지 나온 7권은 농업 집단화와 강제 공업화, 기근, 숙청, 전쟁 준비를 다루었다. 그는 별도로 소련 산업 기술을 서방과 비교하는 연구를 이끌고, 경제 통계와 기록 문서를 편집했으며, 고르바초프와 옐친 시기 소련사 서술의 변화를 분석했다.
데이비스의 역사 해석은 지도자의 사상과 정책을 중요하게 보면서도 결과가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볼셰비키 통치 초기의 경제체제가 급진적 시도와 실용적 조정 사이에서 실험과 적응을 거쳐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거듭하며 강제적 고속 발전의 사회적 비용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 스탈린 지도부가 그 결과를 인정하거나 정책을 조정하지 않은 데 따른 피해를 강조했다. 2018년 연작의 마지막 권에서 그는 자신이 초기에 소련 체제를 ‘새 문명’으로 보았던 판단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선입견보다 세부 사료가 우선한다는 원칙을 자신의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