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카리요

Santiago Carrillo
스페인 공산당 공산주의 스페인 스페인 1915–2012 ○ 자연사

총구 앞에서 담배를 붙인 유로코뮤니즘의 설계자

1981년 2월 23일, 테헤로 중령의 민위대원 200명이 의사당에 난입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의원 전원이 바닥으로 몸을 던질 때, 66세의 카리요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꺼내 천천히 불을 붙였다.

스페인공산당(PCE) 서기장(1960–1982)으로, 베를링구에르·마르셰와 함께 유로코뮤니즘을 주도한 핵심 이론가이다.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모스크바와 단절하고, 『유로코뮤니즘과 국가』(1977)에서 의회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이행을 주장하며 프랑코 사후 스페인의 평화적 민주 이행을 이끌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유로코뮤니즘과 국가: 모스크바와의 결별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은 카리요의 정치적·이론적 전환점이었다. PCE는 이탈리아공산당(PCI)과 함께 서유럽 공산당 가운데 소련의 개입을 가장 단호히 규탄한 당이었고, 카리요는 당을 모스크바의 지도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며 서유럽 현실에 맞는 사회주의 이행 노선을 모색했다. 그 집대성이 1977년의 『유로코뮤니즘과 국가』(Eurocomunismo y Estado)였다. 이 책에서 카리요는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폭력으로 때려부수지 않고도 민주화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도구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혁명으로 생산력이 발전하고 대중 교육이 확대되면서 이데올로기 기구가 위기에 빠졌으며, 따라서 '노동과 문화의 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국가를 내부로부터 변혁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포기를 선언했는데, 이는 노동계급이 소수였던 시기에는 타당했지만 '노동과 문화의 세력'이 압도적 다수가 된 오늘날에는 낡았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장기간에 걸친 공·사 소유 병존을 포함하는 경제 민주화를 제시했다. 소련 잡지 『뉴 타임스』의 공격으로 이 책은 국제적 논쟁의 중심이 되었고, 카리요는 베를링구에르·마르셰와 함께 나눈 1977년 마드리드 선언을 통해 유로코뮤니즘의 이론적 정점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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