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묜 알렉세예비치 라보치킨

Семён Алексеевич Лавочк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0–1960 ○ 심장마비

La-5와 La-7로 동부전선 제공권을 장악한 전투기 설계자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는 늘 비행기를 생각했다 — 이미 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비행기를.”

세묜 라보치킨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 공군 주력 전투기 La-5와 La-7을 설계한 항공기 설계자로, 22,000대 이상 생산되어 동부전선 제공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LaGG-3로 시작한 OKB-301은 전후 La-176으로 소련 최초 음속 돌파(1948년)를 달성했고, 1950년대 이후 S-25 베르쿠트 방공망과 SA-2 대공미사일, 순항미사일 부랴 개발로 방공·우주 분야로 전환했다. SA-2는 1960년 게리 파워스의 U-2기 격추로 냉전사에 기록되었다. 사회주의노동영웅 2회, 스탈린상 4회, 과학아카데미 회원, 공병기술소장을 지냈으며 1960년 사리샤간 시험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방공과 로켓의 총설계자: 베르쿠트에서 부랴까지 (1950~1960)

1950년대에 라보치킨은 전투기 설계에서 방공 미사일과 로켓 체계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1950년 소련 정부는 모스크바 방공을 위한 최초의 지대공미사일 체계 「베르쿠트」(후의 S-25)용 유도탄 개발을 OKB-301에 맡겼다.

사업은 원자폭탄 계획에 준하는 국가적 과제로 추진되었다. 총괄은 각료회의 산하에 새로 만들어진 총국이 맡았고, 재정은 원자력 총국을 통해 집행되었으며 두 총국 모두 L. P. 베리야가 감독했다. 군은 발주자가 아니어서 최고 군 지도부조차 세부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고, 주 개발 기관인 KB-1의 주요 부서장에는 국가보안 장교가 임명되었다.

1955년 실전 배치된 S-25는 22기의 조기경보 레이더와 두 겹의 고리로 모스크바를 둘러싼 56개 지대공미사일 복합체로 구성되었으며, 소련군이 처음 채택한 지대공 유도무기였다. 안쪽 고리는 중심에서 45~50km, 바깥 고리는 85~90km 거리에 놓였고, 이 체계는 약 30년 동안 수도를 방어했다. 배치된 탄은 라보치킨 설계국의 217M과 218이었다. 체계에는 최대 1,200대가 참여하는 대규모 공습을 막아내야 한다는 요구가 제시되었고, 다기능 복합체는 동시에 20개 표적을 교전하도록 설계되었다.

라보치킨 설계국은 「베르쿠트」용 지대공 유도탄 V-300(제품 205)과 V-500, V-600(제품 220)을 설계했고, 제품 205의 첫 발사는 1951년 7월 25일 국립 중앙 시험장에서 이루어졌다. NII-88의 OKB-2에서 지대공 유도탄 연구 성과와 G. N. 바바킨이 이끄는 엔지니어 그룹을 넘겨받았으며, 체계의 항공기 구성 요소용 G-300 공대공 미사일도 개발했다. 체계의 핵심인 다기능 중앙유도 레이더 B-200은 A. A. 라스플레틴 팀이 개발했다.

1953년 11월 20일 결정에 따라 기동형 체계 S-75(SA-2) 개발이 시작되었고, 그 설계는 S-25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했다. 라보치킨 설계국은 1955년부터 S-25의 후속인 「달」 체계용 유도탄(제품 400)을 설계했으나, 이 미사일은 1958~1962년 시험을 거치고도 실전 배치되지 못했다.

1954년 같은 설계국에는 최초의 초음속 대륙간 순항미사일로 기록된 「부랴」(La-350) 개발이 맡겨졌다. 개발 책임자는 라보치킨의 부관이자 부설계자인 N. S. 체르냐코프였고, 이 사업에서 초음속 램제트 엔진과 천문항법 유도 체계, 티타늄 합금 가공과 용접 기술이 소련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1957년 탄도미사일 R-7이 국가 시험을 통과하면서 순항미사일의 전략적 명분은 약해졌고, 1960년 「부랴」 사업은 중단되었다. 1956년 라보치킨은 항공기 제작 분야의 총설계자 직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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