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카에서 출발해 러시아 최고경제회의 의장을 지낸 볼셰비키 산업행정가
1936년, 임업인민위원부가 생산계획을 초과 달성하자 레닌 훈장을 받았다. 1년 뒤 같은 당이 그를 '반소비에트 테러 조직' 혐의로 체포했고, 1937년 10월 30일 선고와 동시에 총살했다.
스몰렌스크 현의 산림감독관 아들로 태어나 건설노동자·제도사로 일했고, 1913년 볼셰비키에 입당했다. 내전기 페트로그라드·사라토프·바시키르 체카 의장을 지내며 소비에트 보안기구의 초기 간부로 성장했다. 네프기 연료·석유 신디케이트를 관리한 뒤 1926년 러시아 최고경제회의(ВСНХ РСФСР) 의장에 올라 공업화의 행정적 토대를 닦았다. 1932년부터 임업인민위원으로 5개년계획기 목재 공급을 책임졌고, 계획 초과 달성으로 1936년 레닌 훈장을 받았다. 1937년 6월 체포되어 10월 30일 총살되었으며 1956년 복권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3–1926 경제·재정·계획 · 소련 · 경제 운영
경력 연표
- 1913볼셰비키 입당, 페트로그라드 로젠크란츠 공장 노동자
- 1917–1918페트로그라드·비보르크 당위원, 공장위원장, 소비에트 대표
- 1918–1919페트로그라드 체카 부의장
- 1919–1920사라토프 체카 의장 → 바시키르 체카 의장 겸 내무인민위원
- 1921–1923석유신디케이트 연료국장
- 1923–1926북서공업국 의장, 최고경제회의 간부
- 1926–1930ВСНХ РСФСР 의장 겸 글라브에네르고 책임자
- 1930–1932소련 공급인민위원부 부위원
- 1932–1936소련 임업인민위원
- 1936–1937러시아 식품공업인민위원
관련 역사 사건
당 지도부 직책
로보프는 산업행정가로만 활동한 것이 아니라 당 지도부의 선출 직책을 두루 맡았다. 1922~1923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었고, 1924년부터 1937년까지 중앙위원이었다. 1927년 4월 16일부터 중앙위원회 조직국 후보위원, 1930년 7월 13일부터 1934년 1월 26일까지 조직국 위원을 지냈다. 또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제1~7기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제11차부터 제17차까지의 당 대회에 대표로 참가했다.
이 선출 직책들은 1937년에 일괄적으로 박탈되었다. 1937년 6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그는 중앙위원직과 당원직에서 제명되었다. 같은 달 21일에는 전 극동변경구위원회 제1서기 이. 엠. 바레이키스의 진술을 근거로 체포되었고, 10월 29일 반소비에트 반혁명 테러조직 가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아 처형되었다. 1956년 3월 14일 소련 최고법원 군사재판부가 그를 복권했고, 같은 달 22일에는 당 중앙위원회 당감독위원회가 당적을 회복시켰다. 출생지는 사료마다 다르게 전한다. 스몰렌스크 현 페시코보 마을로 적은 자료가 있고, 칼루가 현 유흐노프 지역 페시코보 마을로 적은 자료도 있어 확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