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버리고 소피아론 신학을 세운 사제 철학자
네 살배기 아들 이반의 장례식에서 불가코프는 '하느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깨달았다'고 기록했고, 이 신비체험을 정교회 귀환의 결정적 계기로 삼았다.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이자 경제학자로, 법적 마르크스주의자에서 출발해 관념론을 거쳐 사제 서품에 이르는 20세기 러시아 지성사의 대표적 전향 궤적을 그렸다. 1890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저술로 명성을 얻었으나, 《자본주의와 농업》(1900)에서 마르크스 이론의 한계를 발견하고 칸트와 솔로비요프 철학을 경유해 교회로 복귀했다. 1909년 《이정표》에 기고한 「영웅주의와 금욕주의」에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무신론적 혁명주의를 비판했고, 1922년 '철학자의 배'로 추방된 후 파리에서 성 세르기우스 정교신학원을 공동 설립하여 소피아론 신학 체계를 완성했다.
경력 연표
- 1894–1898모스크바대학 법학부 졸업, 정치경제학 강사
- 1895–1900법적 마르크스주의 대표 저술가, 카우츠키·베벨·플레하노프와 교류
- 1901–1906키예프 공대 교수, 키예프대학 사강사
- 1903《마르크스주의에서 관념론으로》 출간
- 1906–1918모스크바대학 사강사, 모스크바 상업대학 교수
- 1907제2국가두마 의원 (오룔현, 무소속 기독교 사회주의자)
- 1909《이정표》에 「영웅주의와 금욕주의」 기고
- 1917–1918전러시아 공의회 위원, 최고교회평의회 위원, 사제 서품
- 1922'철학자의 배'로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추방
- 1925–1944파리 성 세르기우스 정교신학원 공동 설립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