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라조

Сергей Георгиевич Лазо
소비에트 몰도바 1894–1920 ✕ 일본군에 체포되어 화형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세운 볼셰비키 혁명

홀로 무장해제한 채 러스키섬 사관생도들 앞에 선 라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러시아 땅을 위해 우리는 죽을지언정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몰도바 보야르 가문 출신의 러시아 제국군 장교로 1917년 혁명에 합류하여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 수립을 이끈 볼셰비키 군사 지도자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소비에트를 장악하고 자바이칼 전선 사령관으로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백군과 싸웠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지하활동과 유격전을 거쳐 1920년 1월 봉기를 조직해 콜차크의 극동 통치를 무너뜨렸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동료들과 함께 증기기관차 화실에서 불태워졌으며, 소련에서 가장 널리 기념된 내전 순교자 중 한 명이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자바이칼 전선: 세묘노프와의 싸움 (1918)

세묘노프의 진군과 다우리아 전선의 형성

1918년 1월, 일본과 연합국의 지원을 받은 아타만 그리고리 세묘노프가 만주에서 국경을 넘어 자바이칼로 진입했다. 그의 목표는 자바이칼 철도를 장악해 극동을 소비에트 러시아로부터 차단하는 것이었다. 소도시와 코사크 마을들을 점령하며 치타로 접근하는 세묘노프군을 막기 위해, 시베리아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첸트로시비리)는 이르쿠츠크에서 긴급 편성한 부대를 급파했고, 1918년 2월 그 지휘를 세르게이 라조에게 맡겼다. 이렇게 해서 다우리아(자바이칼) 전선이 형성되었다.

안드리아놉카 역의 화물열차에 자리잡은 라조의 사령부

라조의 전선 사령부는 안드리아놉카 역(치타에서 동쪽으로 약 200킬로미터)에 멈춰 선 화물열차 한 칸이었다. 창문 대신 잘라낸 구멍이 뚫린 이 열차 안에는 작은 탁자 하나, 라조가 밤마다 직접 두드리던 휴대용 타자기 한 대, 그리고 소박한 군사 서적 몇 권이 전부였다. 라조는 지휘관으로서 외양에서 평병사들과 전혀 구분되지 않았고, 직접 전선을 순찰하며 병사들과 대화하고 정치 집회를 주재했다. 붉은 군대가 정규군으로 막 조직되기 시작한 시기였기에, 그의 부대는 이르쿠츠크·치타·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인 노동자 적위대, 혁명 편에 선 옛 제국군 병사들, 그리고 빈농 코사크 기병대로 구성된 잡다한 집합이었다. 라조는 이들을 하나의 전투력으로 묶기 위해 엄격한 군율을 세우는 한편, 병사 개개인의 신뢰를 얻는 데에도 각별히 힘썼다. 열네 살 소년으로 세묘노프군에게 가족을 잃고 전선에 찾아온 소년을 제1아르군 기병연대에 배속시킨 것도 라조의 사령부였다.

오논 강 도하: 전선의 전환점

1918년 5월, 라조의 부대는 공세로 전환했다. 첫 주요 전투는 오논 강의 오로뱐나야 역 탈환이었다. 세묘노프군은 다리를 폭파한 채 강 건너 오른쪽 둑의 고지에 포진해 아군의 접근을 포격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라조는 지휘관들을 모아 야간 작전을 구상했다: 극동 수병 분견대가 어둠을 틈타 파괴된 다리 잔해 위로 기어올라 수동 기관총을 거치하고, 그 사이 제1아르군 기병연대가 강을 건너 적 후방으로 우회 기동하는 것이었다. 신호탄과 함께 수병들이 기관총 사격을 퍼부으며 첫 번째 참호선으로 돌격했고, 아르군 기병대가 배후에서 적 진지를 휩쓸었다. 수 시간 만에 세묘노프군은 오논 강 방어선을 버리고 후퇴했다.

좌파 에스에르에서 볼셰비키로: 전장에서 완성된 정치적 전향

바로 이 전선에서 라조의 정치적 정체성도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1917년 좌파 에스에르로 출발했으나, 그해 여름 페트로그라드의 제1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목격한 레닌의 연설에 깊은 인상을 받은 라조는 이미 현장에서 볼셰비키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다우리아 전선의 전투 경험(다국적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반혁명 세력과의 직접적 대결, 그리고 전선의 노동자·병사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당 조직의 현실)은 그를 1918년 봄 공식적으로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하게 했다. 그해 여름까지 라조의 부대는 세묘노프군을 계속 압박하여 만주 국경까지 몰아붙였고, 일시적으로나마 자바이칼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수호하는 데 성공했다. 1918년 가을 시베리아 전체가 콜차크의 공세로 함락되면서 라조는 지하로 잠입해야 했지만, 다우리아 전선에서 쌓은 군사적·정치적 경험은 이후 그가 프리모리예 유격대 총사령관으로서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봉기의 조직자로서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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