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안드레예비치 무롬체프

Сергей Андреевич Муромцев
입헌민주당 제정·백색진영 러시아 러시아 1850–1910 ○ 심장마비

러시아 최초의 헌법적 의회를 이끈 로마법 학자이자 카데트 지도자

1906년 4월 27일 첫 국가두마 개회사: "국가두마에 경의를 표합니다. 위대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민의 의지가 불변의 법에 기초한 입법 기관으로 표현됩니다."

로마법 학자이자 카데트 창립 지도자였던 세르게이 무롬체프는 러시아 헌정주의의 얼굴이었다. 모스크바 대학 교수로 법사회학을 개척했고, 법률학회 회장으로 사법 개혁을 주도했다. 1906년 제1대 국가두마 의장에 당선되어(426/436표) 러시아 최초의 입헌적 대의기관을 이끌었으나, 의회 해산 후 비보르크 호소에 서명해 수감되었다. 1910년 그의 장례식은 1905년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반체제 시위로, 헌정사에 신화로 남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제1대 국가두마 의장과 비보르크 호소

1906년 4월 모스크바 대표로 제1대 국가두마에 들어간 무롬체프는 5월 10일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두마에는 의사규칙과 의장단의 선례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았고, 그는 의원들 사이의 모욕과 정부에 대한 격한 발언을 제지하면서도 대표기관의 권리와 자유주의적 개혁을 옹호했다. 대통령도 아닌 의장직을 당파를 초월해 수행하려고 카데트당 중앙위원회에서 물러나고 당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후대의 회고가 있다. 니콜라이 2세가 두마를 해산하자 무롬체프는 선출된 의회가 계속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핀란드 비보르크에서 해산에 항의하는 의원들의 회의를 주재했다. 그 회의에서 카데트·노동파·사회민주파 의원들이 채택한 비보르크 호소에 서명한 그는 다른 서명자들과 함께 재선 및 지방자치 선거 출마 자격을 잃고, 1908년 모스크바에서 3개월의 금고형을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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