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스테프냐크-크라프친스키

Сергей Михайлович Степняк-Кравчинский
나로드니키 러시아 우크라이나 1851–1895 ✕ 열차 사고사

차르 헌병대장을 단검으로 처단하고 펜으로 서구에 러시아 혁명을 소개한 나로드니키

1878년 메젠초프 암살 직전, 크라프친스키는 선언문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사랑을 충분히 설교했다 — 이제 증오를 불러낼 때가 왔다. 무자비한 피의 복수가 이제부터 너희 악행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러시아 나로드니키 혁명운동과 서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작가이자 혁명가. 차이콥스키 서클에서 활동하고 1878년 헌병대장 메젠초프를 단검으로 암살한 후 망명하여, 런던에서 『지하 러시아』(1883)를 출판하고 자유 러시아 출판 기금과 러시아 자유의 벗 협회를 창립해 망명 반체제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런던 망명과 러시아 혁명의 기록

1878년 메젠초프 암살 뒤에도 크라프친스키는 러시아에 남아 지하 조직 『젬랴 이 볼랴』의 신문에 글을 썼다. 그해 가을 러시아를 떠나 스위스에 잠시 머문 뒤 런던에 정착했다. 1882년 런던에서 출간한 『지하 러시아』는 혁명가들의 초상과 지하활동에 관한 글을 묶어 서유럽 독자에게 러시아 혁명운동을 알렸다. 역사학자 앨프리드 센은 이 책을 서구 시장을 겨냥해 러시아 혁명가가 쓴 초기 기록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며, 서구 상업 출판시장을 통해 차르 검열이 허용하지 않을 내용을 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1883년 뉴욕판의 목차에는 선전, 테러리즘, 혁명가들의 생애, 비밀 인쇄소 등 여러 주제가 들어갔고, 서문은 표트르 라브로프가 썼다.

런던에서 크라프친스키는 러시아 자유의 벗 협회를 세우고 러시아 자유출판 및 그 기금을 조직했으며, 협회 기관지 『프리 러시아』의 편집에도 참여했다. 이 활동은 저술을 넘어 러시아 혁명운동에 대한 정보를 유통하고 망명 반체제 인사와 영국의 지지자들을 연결했다. 그는 농민의 처지와 니힐리즘, 러시아의 생활 조건을 다룬 저술을 이어갔다. 초기에는 개인적 정치폭력이 차르의 민주개혁을 이끌 수 있다고 보았으나, 말년에는 입헌적 방법으로 기울었고 『왕황새와 왕통나무』(1895)에서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논의와 평화적 선동을 통한 개혁 노력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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