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혁명 당시 시위대 발포를 명령하고 수비대 통제력을 상실한 마지막 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
2월 26일 하발로프는 도심을 봉쇄하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명령했으나, 다음날 볼린스키 연대가 이를 거부하며 수비대 전체가 봉기했다.
오세티야계 출신의 제정 러시아 군인으로, 미하일롭스코예 포병학교와 니콜라예프 참모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참전했다. 모스크바 군사학교와 파블롭스크 군사학교 교장을 거쳐 1916년 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나, 1917년 2월 혁명 당시 니콜라이 2세의 진압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비대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혁명 후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고, 내전 후 남러시아에 남아 예센투키에서 빈곤 속에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78미하일롭스코예 포병학교 졸업, 러시아-튀르크 전쟁 참전
- 1886니콜라예프 참모아카데미 졸업, 근위대 참모 근무
- 1903–1905모스크바 군사학교 교장
- 1905–1914파블롭스크 군사학교 교장
- 1914–1916우랄주 군사령관 겸 우랄 코사크군 아타만
- 1916–1917.02페트로그라드 군관구 사령관
- 1917.02시위 진압 명령 수행 중 수비대 통제력 상실, 체포
- 1917.10–1929석방 후 남러시아에서 생활, 예센투키에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2월 혁명 진압 시도와 수비대의 봉기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확산되자, 군관구 사령관 하발로프는 군대를 동원해 다리와 주요 도로를 통제하고 정부 기관을 경비하게 했다. 니콜라이 2세는 2월 25일(신력 3월 10일) 전보로 수도의 소요를 단호히 진압하라고 요구했다. 다음 날 군대는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했고, 특히 즈나멘스카야 광장에서는 볼린스키 연대 병력이 발포해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복종은 무너지고 있었다. 2월 27일(신력 3월 12일) 볼린스키 연대의 훈련대가 봉기한 뒤 반란은 다른 부대로 번졌고, 병사들은 노동자들과 합류했다. 하발로프는 대부분의 부대가 명령을 거부하거나 봉기군 편에 섰다고 보고하면서도 남은 충성파 병력으로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알렸다. 28일 그는 아드미랄테이스키 청사에서 병력을 철수시켰다. 그의 지휘 아래 이뤄진 진압은 사상자를 냈지만, 수도 수비대를 통제하지 못해 제정 권력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