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간 소련 핵무기·원자력 산업 전체를 지휘한 '위대한 예핌'
사고가 날 때마다 슬라프스키는 가장 먼저 위험 구역으로 들어갔다. 훗날 의사들이 그의 누적 피폭량을 추산해보니 약 1,500뢴트겐, 치사량의 세 배였다. 동료들은 그를 '위대한 예핌'이라 불렀다.
도네츠크 탄광 소년 광부 출신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한 후 엔지니어가 된 슬라프스키는, 알루미늄 공장장을 거쳐 1946년 원자폭탄 계획에 투입되었다. 첼랴빈스크-40 비밀 복합체 책임자로서 1949년 첫 핵실험의 플루토늄을 생산했고, 수소폭탄과 차르봄바 개발을 지휘하며 세 차례 사회주의 노동 영웅이 되었다. 1957년부터 29년간 중형기계공업 장관으로 핵무기·원자력 산업 전체를 총괄했고, 소련의 폐쇄 원자력 도시들과 거의 모든 원전을 세웠다. 1,500뢴트겐의 방사선을 견디며 현장을 지킨 거구의 지휘관으로 '위대한 예핌'이라 불렸다.
경력 연표
- 1912–1928도네츠크 탄광 소년 광부, 적위대·제1기병군 복무 후 제대
- 1933–1941모스크바 비철금속연구소 졸업, 엘렉트로친크 공장장, 드네프르 알루미늄 공장장
- 1941–1945우랄 알루미늄 공장장, 전시 알루미늄 생산 총괄로 레닌 훈장 3회
- 1946–1953제1총국 부국장 겸 콤비나트 817호(마야크) 책임자, 첫 원자폭탄 플루토늄 생산
- 1953–1957중형기계공업 제1차관, 수소폭탄 개발 참여
- 1957–1986중형기계공업 장관(29년), 차르봄바·핵잠수함·원전·폐쇄 원자력 도시 건설 총괄
- 1986체르노빌 사고 수습 지휘 후 강제 퇴임
관련 역사 사건
알루미늄에서 플루토늄까지: 원자폭탄으로 가는 길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슬라프스키는 비철금속 공장 책임자였다. 드네프르 알루미늄 공장(자포로제)과 우랄 알루미늄 공장(카멘스크-우랄스키)을 거쳐 1945년 소련 비철금속 인민위원부 부위원이 되었다. 1946년 그는 갑자기 제1총괄국(PGU) 부국장으로 발탁되어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투입되었다. PGU는 라브렌티 베리야가 총괄하던 핵무기 비밀 기구였다. 1947년 슬라프스키는 남부 우랄의 첼랴빈스크-40(현 오조르스크)에 건설 중인 제817복합체의 소장 겸 수석 기술자로 파견되었다. 이곳은 소련 최초의 산업용 원자로와 플루토늄 분리 시설이 들어서는 장소였다. 1949년 8월 29일, 제817복합체에서 생산된 플루토늄으로 만든 첫 원자폭탄 RDS-1이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성공적으로 폭발했다. 이 공로로 슬라프스키는 보리스 반니코프, 이고리 쿠르차토프, 율리 하리톤과 함께 첫 번째 사회주의 노동 영웅 훈장과 스탈린 상을 받았다. 알루미늄 공장의 생산 관료에서 핵무기 개발의 핵심 책임자로 변모한 이 경험은 이후 30년 가까이 소련 핵산업 전체를 지휘하게 되는 정치적·기술적 기반이 되었다.
키시팀 사고와 방사능 제염 (1957년)
1957년 9월 29일, 슬라프스키가 플루토늄 생산을 지휘했던 마야크 복합체(콤비나트 817호)의 방사성 폐기물 저장탱크가 냉각 장치 고장으로 폭발했다. 2만 퀴리에서 2천만 퀴리로 추정되는 방사능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고, 동시베리아 횡단 300km×50km의 '동시베리아 방사능 흔적'이 형성되었다. 이 사고는 체르노빌 이전까지 세계 최대의 핵 사고였다.
슬라프스키는 즉시 사고 수습 책임을 맡아 오체르스크·체르냅스크 등 오염 지역 주민 1만여 명을 긴급 소개하고, 방사능이 집중된 토양을 굴착해 매립하는 방식을 현장에서 직접 지휘했다. 1958년 봄에는 가장 오염이 심한 호수 카라차이와 테차 강 수계를 격리하기 위한 광범위한 토목 공사에 착수했다. 이때 개발된 오염 토양 굴착·매립 공법과 격리 구역 설정 방식은 30년 후 체르노빌 사고 수습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슬라프스키는 평소처럼 방호복만 입은 채 고방사능 구역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후일 의사들이 추산한 그의 누적 피폭량은 약 1,500뢴트겐으로 치사량의 세 배에 달했다. 1990년에야 비로소 공개된 이 사고의 은폐 결정은 흐루쇼프와 중앙위원회의 정치적 판단이었으며, 슬라프스키 자신은 사고 수습에 전념한 현장 지휘관이었다. 키시팀 사고 수습 경험은 이후 소련 원자력 산업의 비상 대응 체계 수립에 결정적인 선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