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루스트 사건으로 해임된 국방장관
1987년 5월 28일, 19세 서독 조종사 마티아스 루스트가 경비행기로 소련 방공망을 뚫고 붉은 광장에 착륙했다. 이틀 뒤 정치국에서 고르바초프가 소콜로프의 해임을 제안하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55년 복무한 원수는 한 소년의 비행 한 방에 물러났다.
하산 호 전투와 독소전에서 기갑부대를 지휘하며 성장한 소비에트 군사 엘리트로, 1967년부터 17년간 국방부 제1차관으로 군부의 제도적 중추 역할을 했다. 1978년 소비에트 연방 원수로 진급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작전조 책임자로서 소련군의 실질적 지휘를 맡았다. 1984년 국방장관에 올랐으나, 1987년 마티아스 루스트의 붉은 광장 착륙 사건으로 고르바초프에 의해 해임되었다. 101세까지 생존한 유일한 소비에트 연방 원수로, 소련군의 전성기와 종말을 모두 목도한 인물이다.
경력 연표
- 1941–1945독소전 참전, 기갑·기계화 지휘 경험 축적
- 1960s–1970s레닌그라드 군관구와 국방부 제1차관으로 승진
- 1979–1980s아프가니스탄 전쟁 지휘·감독에 깊이 관여
- 1984–1987국방장관, 고르바초프 초기 군부의 보수적 얼굴
- 1987마티아스 루스트 모스크바 착륙 사건 뒤 해임
관련 역사 사건
아프가니스탄 전쟁 작전 책임자
소콜로프는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에서 소련군 작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핵심 인물이었다. 1980년 국방부 제1차관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 국방부 작전조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1985년까지 이 직을 수행했다. 공식 임무는 소련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사이의 연락·협력이었으나, 실제로는 아프가니스탄군과 소련군 제한파견부대(ОКСВА)의 전투 작전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1980년 4월 28일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에 대한 국제적 원조 제공에서 보여준 개인적 용기와 능숙한 부대 지휘'를 이유로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와 금성 메달을 받았다. 그의 지휘 아래 소련군은 판지시르 계곡 공세 등 대규모 작전을 반복했고,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고착되었다. 1984년 12월 드미트리 우스티노프의 사망으로 국방장관에 취임한 뒤에도 아프가니스탄 정책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