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라프 스타니슬라보비치 슈시케비치

Станіслаў Станіслававіч Шушкевіч
벨라루스 국가기관 벨라루스 벨라루스 1934–2022 ○ 코로나19 합병증

체르노빌 진실을 요구한 핵물리학자, 소련의 종말을 고르바초프에게 직접 통보한 사람

고르바초프가 물었다. '국제사회 반응은 생각했나?' 나는 답했다. '옐친이 지금 부시와 통화 중입니다. 부시는 찬성하는 눈치입니다!'

민스크에서 태어난 핵물리학자로, 벨라루스 국립대학 교수이자 라디오전자공학 전문가였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조사위원회에서 소련 당국의 은폐에 맞서 진실 공개를 요구하다 해임되었고, 이 경험이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1991년 벨라루스 최고소비에트 의장으로서 비스쿨리 사냥 별장에서 옐친·크랍추크와 회동을 주최했으며, 원래 석유·가스 공급 논의로 시작된 자리에서 소련 해체 선언문에 처음으로 서명 의사를 밝혔고, 고르바초프에게 전화를 걸어 소련이 끝났음을 통보했다. 독립 벨라루스의 첫 국가원수였으나 1994년 루카셴코의 부패 의혹 공세로 실각했고, 말년에는 망명하지 않고 민스크에서 루카셴코 정권을 비판하는 야당 원로로 남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비핵화와 중립 노선

슈시케비치는 벨라루스가 소련에서 독립한 뒤 남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문제에서 가장 이른 결정을 내린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문헌들은 그가 우선권이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핵무기 철수를 추진했다고 기록한다. 그 근거로는 벨라루스가 핵전쟁에서 파괴될 수 있다는 지리적 조건, 무기 유지에 드는 기술·비용 부담, 그리고 헌법이 선언한 중립·비핵 지위가 함께 제시된다. 1991년 최고소비에트 의장이 된 뒤 최고소비에트는 1992년 1월 비확산조약 가입을 승인했고, 같은 해 4월 국제통화기금과 유럽부흥개발은행 가입을 결의했다. 벨라루스는 1992년 리스본 의정서에 서명하고 전술핵무기를 러시아로 넘겼으며, 1993년에는 전략무기감축조약과 리스본 의정서를 비준해 비핵국가로 남기로 했다. 국방·국경·문화·신앙 관련 법률들도 이 시기에 잇따라 채택되었다. 같은 해 4월 제11차 최고소비에트 임시회의에서 슈시케비치는 발트 3국·폴란드·루마니아·몰도바·우크라이나 등에 중립국 지대 구상을 제안했고, 자국 중립을 묻는 국민투표도 제안했다. 확보된 자료는 벨라루스가 이후 어느 강대국의 핵우산에 편입되는 조건을 당시 추진했는지 여부를 밝혀주지 않으며, 비핵화 결정에 대한 평가도 나뉜다. 따라서 이 항목은 그가 추진한 정책과 결의의 연쇄를 사실 관계로 제시하는 데 그친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