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레나 드미트리예브나 스타소바

Елена Дмитриевна Стасова
소련 러시아 1873–1966 ○ 자연사

혁명 직후 당 서기국의 실무 관리자

마리야 에센이 지하 가명을 정할 때 말했다. "차라리 '정언명령'이라 부르고 싶지만 너무 기니까, 그냥 '압솔류트'로 하자." 스타소바는 그 이름대로 임무를 절대 실수하지 않는 당의 연락책이 되었다.

1898년 사회민주노동당 창립과 함께 입당한 구볼셰비키로, 이스크라의 지하 연락책과 위조문서·무기 운반을 도맡아 '아브솔류트'(절대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7년부터 중앙위 기술서기와 서기국 의장으로서 합법화된 당의 장부·연락·회의 실무를 체계화했고, 이후 코민테른 독일 담당과 MOPR 의장으로 국제 혁명가 구호 조직을 이끌었다. 초기 당 기구의 조직적 토대를 닦은 몇 안 되는 여성 중앙위원이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MOPR 의장과 대숙청 속의 일갈 (1927–1937)

스타소바의 가장 긴 공직은 1927년부터 1937년까지 10년간 맡은 국제혁명투사원조회(MOPR) 중앙위원회 의장이었다. MOPR는 코민테른 산하의 국제적 '적십자' 조직으로, 각국에서 투옥된 혁명가와 그 가족에게 법률 지원·구호금·물자를 제공했다. 스타소바는 이 조직을 소비에트 체제의 인도주의적 얼굴로 키워냈고, 1933년에는 외국 혁명가들의 자녀를 위한 이바노보 인터돔을 설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37년 대숙청이 한창이던 시기, 스타소바는 MOPR 활동가들 앞에서 "진정한 혁명가들은 부르주아 감옥뿐 아니라 우리 소비에트 감옥에도 갇혀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NKVD의 대량 체포가 옛 볼셰비키 동지들까지 집어삼키는 현실을 직시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일까지 각자 돈과 따뜻한 옷을 가져오라. 내가 직접 전달을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곧바로 MOPR 의장직에서 해임되었고, 이후로는 더 이상 독자적인 권한을 가진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 자신은 체포되지 않았고, 이후 프랑스어판 『인테르나치오날나야 리테라투라』지 편집자(1938–1943)와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고문(1946년 이후)으로 조용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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