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타노프 밑에서 원자폭탄 사업의 출범을 실무로 꾸린 GKO 과학실 선임보좌관
모스크바에 100명을 불러들여 입경 허가를 내고, 살 집과 배급 카드를 주고, 사이클로트론용 초고순도 철과 원자로용 99% 흑연을 구해야 했다: 바레진이 1943년 봄의 긴박했던 일상을 회고하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4세에 적군에 입대한 1세대 소비에트 화학자. GKO 과학 전권위원 카프타노프의 선임보좌관으로서 1942-43년 소련 원자폭탄 사업의 출범을 실무로 꾸렸다: 스타리노프가 노획한 독일 장교의 '원자 수첩'을 접수해 번역을 주선하고 의미를 알아챘으며, 플료로프의 편지를 검토하고, 쿠르차토프를 먼저 면담해 카프타노프에게 데려갔다. 쿠르차토프와 함께 제2연구소 건물을 물색하고 과학자 100여 명의 모스크바 출입 허가·주택·배급 카드를 해결했으며, 이오페-카프타노프 공동 청원서 초안을 작성해 1942년 9월 28일 GKO 결의의 기초를 놓았다. 이후 레닌 사범대로 복귀해 금속 부식 억제제 분야의 학파를 세웠고 80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경력 연표
- 1919–1924초등학교 교사·고아원장, 비르스크 현 콤소몰 지도자
- 1925–1932게르첸 사범대학 졸업, 적색교수대학원 이수, 카르포프 연구소 연구원
- 1936–1938쿠이비셰프 의과대학 물리·콜로이드 화학 주임
- 1938–1941레닌 사범대 화학과장, 고등교육위원회 대학부장
- 1941–1943GKO 과학 전권위원 선임보좌관: 원자폭탄 사업 출범 실무
- 1944–1948볼셰비키당 중앙위 간부국 대학·과학기관 부부장
- 1948–1967레닌 사범대 일반·분석화학 주임, 금속 부식 억제제 연구실 창설
- 1967–1982유네스코 인도 교육 개혁 고문, 『학교에서의 화학』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