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분쟁·프라하의 봄·데탕트를 관통한 24년 임기 소련 대사
1968년 8월 21일, 지시보다 두 시간 앞서 스보보다 대통령을 찾아간 체르보넨코는 체코슬로바키아군의 무저항 전문을 이끌어냈다. 그레치코 원수의 회고: 「그 공으로 대사에게 레닌훈장을 두 개 줘야 한다고 누군가 말하더군.」
소련 외교관으로 중소 분열기 주중 대사(1959~1965), 프라하의 봄 당시 주체코슬로바키아 대사(1965~1973), 주프랑스 대사(1973~1982)를 지냈다. 1968년 8월 21일 모스크바 지시보다 두 시간 앞서 스보보다 대통령을 찾아가 체코슬로바키아군에 무저항 명령을 설득해 대규모 유혈 충돌을 막았으며, 소련 지도부는 이 공로에 「레닌훈장 두 개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1961~1989년 CPSU 중앙위원, 5개 레닌훈장 수훈.
경력 연표
- 1937–1941중학교 교사·교장, 키예프주·수미주
- 1941–1944붉은군대 복무, 위대한 조국전쟁 참전
- 1944–1949체르카시 사범대학 마르크스-레닌주의 학과장·부학장
- 1949–1951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선전부 강사단장
- 1951–1956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과학·고등교육 부장
- 1956–1959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서기(이념 담당)
- 1959–1965주중국 소련 특명전권대사
- 1965–1973주체코슬로바키아 소련 특명전권대사
- 1973–1982주프랑스 소련 특명전권대사 (마다가스카르 겸임 1973~1974)
- 1982–1988CPSU 중앙위 해외간부·출국관리 부장
- 1989–1993소련·러시아 외무부 고문
관련 역사 사건
베이징 임무와 중소 분열 (1959–1965)
체르보넨코가 1959년 10월 주중 소련 대사로 부임했을 때, 중소 관계는 이미 결정적 균열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의 부임 직전인 1959년 9월 말, 흐루쇼프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주년 기념식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했고, 마오쩌둥과의 정상회담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양측의 근본적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결렬되었다. 체르보넨코는 이후 6년 가까이 베이징에 주재하며 관계 악화의 전 과정을 정면에서 목격하고 관리해야 했다. 1960년 7월 소련은 중국 내 모든 전문가 1,390명을 일방 철수시켰고, 양국은 공개서한을 주고받으며 이념 논쟁을 격화시켰다. 체르보넨코는 이 시기 천이 부총리 등 중국 지도부와 수차례 회담하여 현안을 조율하려 했으나, 양측의 적대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1965년 4월, 브레즈네프 지도부는 체르보넨코를 경질하고 세르게이 라핀을 후임 대사로 임명하여 대중국 관계 재조정을 시도했다. 체르보넨코가 떠난 지 2년 후인 1967년 1월, 홍위병들은 베이징 소련 대사관을 2주간 포위하고 돌을 투척했으며, 이는 그가 외교관으로서 겪은 중소 분열의 극적인 귀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