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포」라 불린 몬테네그로 출신 파르티잔 지도자, 1948년 스탈린의 편지가 지목한 인물
몬테네그로 츠르므니차의 농가에서 태어나 베오그라드 대학 법학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1933년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 들어갔다.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버릇 때문에 「템포」라는 별명을 얻었다. 2차 대전 중 최고사령부 위원으로 보스니아 파르티잔 본부를 이끌었고, 티토의 개인 대리인으로 마케도니아에서 봉기를 조직하며 그리스·알바니아·불가리아 공산당과 연락했다. 전후 유고슬라비아군 정치총국장을 지냈고, 1948년 스탈린·몰로토프의 편지는 그를 「미심쩍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지목했다. 이후 경제 부처와 연방 부총리, 노동조합연맹 의장을 지냈다.
다른 이름: 스베토자르 부크마노비치 템포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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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1969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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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945
군사·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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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48
유고슬라비아 국가기관유고슬라비아군 정치총국장
군사·지휘 -
1948–1958
유고슬라비아 국가기관연방집행위원회 부의장
경제·재정·계획
경력 연표
- 1912.08.03몬테네그로 츠르므니차의 포드고르 마을에서 태어났다.
- 1931베오그라드 대학 법학부에 들어가 혁명적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 1933유고슬라비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 1941.09.26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파르티잔 본부 사령관, 최고사령부 위원.
- 1943–1944티토의 대리인으로 마케도니아·코소보에서 봉기를 조직하고 그리스·알바니아·불가리아 공산당과 연락했다.
- 1945–1948유고슬라비아군 정치총국장 겸 국방 차관.
- 1948제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 1948.03.27스탈린·몰로토프의 편지가 그를 「미심쩍은 마르크스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 1950『그리스 민족해방운동은 어떻게, 왜 패배했는가』를 펴냈다.
- 1954–1958연방집행위원회 부의장.
- 1958–1967유고슬라비아 노동조합연맹 중앙평의회 의장.
- 2000.12.06몬테네그로 레제비치에서 사망했다.
1948년 티토-스탈린 결별과 「미심쩍은 마르크스주의자」
전쟁이 끝난 뒤 부크마노비치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유고슬라비아군 정치총국장과 국방 차관으로 티토 곁에서 일했다. 1948년 3월 1일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소련의 고문단과 경제 압력을 둘러싼 불만이 터져 나왔고, 그도 이 자리에서 발언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이 발언들은 소련 쪽에 전해졌다.
3월 27일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서명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편지는 유고슬라비아 지도자들이 뒤에서 소련 공산당을 비방한다고 고발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자들로 「질라스, 부크마노비치, 키드리치, 란코비치 같은 미심쩍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들었다. 공간자의 주석에 따르면 이 네 사람은 모두 3월 1일 확대회의의 발언자였다. 4월 13일 티토와 카르델리의 답신은 소련 쪽이 신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검증된 지도자들의 이름을 들었다고 반박했다. 6월 코민포름이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을 제명한 뒤에도 유고슬라비아 지도부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는 그해 제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50년 그는 『그리스 민족해방운동은 어떻게, 왜 패배했는가』를 펴냈다. 전쟁 중 티토의 대리인으로 그리스 공산당과 직접 연락했던 그가 내전에서 진 그리스 혁명의 책임을 따진 이 책은, 결별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소련 진영과 벌인 논쟁의 한 부분이었다. 그 뒤 그는 광업 장관과 경제위원회 의장을 거쳐 1954~1958년 연방집행위원회 부의장을 지내며 결별 이후의 경제 개편을 맡았고, 1958~1967년에는 노동조합연맹 의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