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팽크허스트

Sylvia Pankhurst
볼셰비키에 대한 좌파 비판 영국 영국 1882–1960 ○ 자연사

어머니의 WSPU를 떠나 이스트엔드 노동자 여성과 함께한 좌익 공산주의자

「볼셰비키는 공산주의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 1922년 레닌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그녀는 이렇게 경고했다. 『워커스 드레드노트』를 당에 넘기기를 거부하고 CPGB에서 축출된 그녀는, 당 규율보다 자유로운 논쟁을 선택했다.

영국 참정권 운동가이자 좌익 공산주의자, 반식민 운동가. 어머니 에멀린의 WSPU와 결별하고 이스트엔드의 노동계급 여성 조직화에 헌신했으며, 레닌과 논쟁하며 평의회 공산주의로 전환한 뒤 생애 말년을 에티오피아의 반파시스트 독립 연대에 바쳤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전시 동런던 조직과 여성 노동자 지원

1914년 1월, 여성사회정치연합(WSPU) 지도부가 실비아 팽크허스트의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거부하자 동런던 지부는 동런던 여성참정권연맹(ELFS)으로 분리됐다. 팽크허스트와 동료들은 참정권 운동을 노동계급 여성의 조직 및 노동운동과 결합하고, 성인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ELFS는 전쟁에 반대하면서도 동런던 주민의 생계와 노동 조건을 다루는 활동을 펼쳤다. 팽크허스트는 전쟁 선포 후 2주 안에 저렴한 식당을 열어 하루 400끼를 한 끼당 1페니에 제공했고, 아기 진료소에서 의료와 우유·달걀·옷을 지원했다. 폐업한 술집 건물을 몬테소리 방식의 보육원 ‘마더스 암스’로 바꾸기도 했다. 1914년 보우에 세운 장난감 공장은 여성 59명을 고용해 주당 1파운드를 지급했다. 여성들이 장난감을 직접 고안하면 공장이 이를 사들이고 판매에 따른 인세도 지급했다. 팽크허스트가 이 공장을 군수 노동의 대안으로 만들려 했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지만, 그는 저임금과 위험한 군수공장 노동에 대한 보도로 노동 조건 개선도 요구했다. 신문은 군수공장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폭로했고, 이에 공장 측 변호사가 명예훼손 소송을 위협하자 팽크허스트는 소송 대응 기금을 호소했다. 1917년 조직은 노동자참정권연맹, 이어 노동자사회주의연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신문은 《노동자의 드레드노트》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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