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WSPU를 떠나 이스트엔드 노동자 여성과 함께한 좌익 공산주의자
「볼셰비키는 공산주의를 저버리기 시작했다」 — 1922년 레닌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그녀는 이렇게 경고했다. 『워커스 드레드노트』를 당에 넘기기를 거부하고 CPGB에서 축출된 그녀는, 당 규율보다 자유로운 논쟁을 선택했다.
영국 참정권 운동가이자 좌익 공산주의자, 반식민 운동가. 어머니 에멀린의 WSPU와 결별하고 이스트엔드에서 노동계급 여성 조직화에 나섰다. 노동자사회주의연맹(WSF)을 창설하고,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레닌과 논쟁했으며, 이후 볼셰비키 노선을 비판하는 평의회 공산주의자로 전환했다. 생애 마지막 25년을 에티오피아 반파시스트 연대에 바쳤고, 『뉴 타임스 앤드 에티오피아 뉴스』를 통해 범아프리카주의와 라스타파리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성 삼위일체 대성당 애국자 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경력 연표
- 1882맨체스터에서 에멀린·리처드 팽크허스트의 딸로 출생
- 1903–1914WSPU 전임 활동가 — 로고·현수막 디자인, '블랙 프라이데이'(1910) 목격, 여성참정권 운동 전국 조직
- 1914–1918이스트엔드참정권연맹(ELFS) 설립, 『우먼스 드레드노트』 창간 — 전쟁 반대·징병 거부, 임대료 파업·공동급식 조직
- 1918–1920노동자사회주의연맹(WSF) 창설, 『워커스 드레드노트』 발행 — 코민테른 제2차 대회 참석, 레닌과 직접 논쟁
- 1921–1924CPGB에서 축출, 「레닌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발표 — 평의회 공산주의로 전환, 공산노동자당(CWP) 결성
- 1935–1956『뉴 타임스 앤드 에티오피아 뉴스』 창간·편집 — 이탈리아 파시스트 침공 반대, 범아프리카·반식민지 여론 형성
- 1956–1960에티오피아로 이주 —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고문, 최초의 교육병원 기금 모금, 『에티오피아: 문화사』 저술
- 1960아디스아바바에서 78세로 사망 — 에티오피아 국장, 성 삼위일체 대성당 애국자 묘역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