텡기즈 예브게니예비치 아불라제

თენგიზ ევგენის ძე აბულაძე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그루지야 1924–1994 ○ 자연사

글라스노스트의 문화적 신호탄을 쏘아올린 그루지야의 영화감독

「참회」가 봉쇄되었을 때 아불라제는 필름이 파기될까 두려워 유일한 비디오 사본을 자신의 침대 밑에 보관했다.

그루지야 출신의 소련 영화감독. 1955년 레조 치헤이제와 공동 연출한 데뷔작 「마그다나의 당나귀」로 칸 단편상을 수상했고, 「기도」(1967)·「소망의 나무」(1976)·「참회」(1984)로 이어지는 삼부작을 완성했다. 1984년 완성 후 2년간 봉쇄되었던 「참회」는 1986년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 속에서 공개되어 스탈린 시기 테러를 우화적으로 고발한 최초의 소련 영화가 되었고, 그 공개 자체가 글라스노스트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문화적 신호탄이었다. 1987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소련 인민대의원(1989~1991)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참회」의 제작과 공개

아불라제는 1937년 서부 그루지야에서 실제로 일어난 보복 사건을 바탕으로 「참회」의 구상을 시작했다. 제작진은 이를 단순한 보안기관원의 범죄극으로 재현하지 않고, 권력자의 폭력과 그 기억이 다음 세대에 남기는 결과를 다루는 우화로 발전시켰다. 아불라제와 공동 각본가 나나 자넬리제는 스탈린 시대 탄압을 겪은 그루지야인, 특히 ‘인민의 적’으로 지목된 이들의 아내들을 만나 증언을 모았다. 자넬리제의 회고에 따르면 이 증언과 그루지야의 구체적 경험을 영화의 세부에 반영했다.

각본은 모스크바의 국가영화위원회 검열을 피하기 위해 그루지야 텔레비전의 자체 편성 시간과 예산을 이용해 제작하는 방식으로 승인을 얻었다. 그루지야 당 지도자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는 각본을 읽고 제작을 허용했으며, 그루지야 정부는 약 100만 루블을 배정했다. 제작진은 희생자들의 경험이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부조리하게 들린다고 판단해 사실주의 대신 그로테스크와 초현실주의적 환상극을 택했다. 영화는 1984년 12월 완성되어 그루지야 텔레비전에서 처음 방영됐으나 곧 상영이 중단됐다. 1987년 검열 완화 뒤 다시 공개되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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