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노스트의 문화적 신호탄을 쏘아올린 그루지야의 영화감독
「참회」가 봉쇄되었을 때 아불라제는 필름이 파기될까 두려워 유일한 비디오 사본을 자신의 침대 밑에 보관했다.
그루지야 출신의 소련 영화감독. 1955년 레조 치헤이제와 공동 연출한 데뷔작 「마그다나의 당나귀」로 칸 단편상을 수상했고, 「기도」(1967)·「소망의 나무」(1976)·「참회」(1984)로 이어지는 삼부작을 완성했다. 1984년 완성 후 2년간 봉쇄되었던 「참회」는 1986년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 속에서 공개되어 스탈린 시기 테러를 우화적으로 고발한 최초의 소련 영화가 되었고, 그 공개 자체가 글라스노스트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문화적 신호탄이었다. 1987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소련 인민대의원(1989~1991)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문학·예술
- 1978– 사회운동·조직 · 소련공산당·볼셰비키
경력 연표
- 1943트빌리시 연극학교 입학, 1946년 졸업
- 1953VGIK 졸업, 그루지야필름 입사
- 1955「마그다나의 당나귀」 공동 연출, 칸영화제 단편상(1956)
- 1967삼부작 첫 영화 「기도」 완성
- 1976「소망의 나무」 완성, 트빌리시 연극학교 교수
- 1984「참회」 완성, 2년간 상영 금지
- 1986「참회」 공개, 글라스노스트의 상징이 되다
- 1989소련 인민대의원 선출
관련 역사 사건
「참회」의 제작과 공개
아불라제는 1937년 서부 그루지야에서 실제로 일어난 보복 사건을 바탕으로 「참회」의 구상을 시작했다. 제작진은 이를 단순한 보안기관원의 범죄극으로 재현하지 않고, 권력자의 폭력과 그 기억이 다음 세대에 남기는 결과를 다루는 우화로 발전시켰다. 아불라제와 공동 각본가 나나 자넬리제는 스탈린 시대 탄압을 겪은 그루지야인, 특히 ‘인민의 적’으로 지목된 이들의 아내들을 만나 증언을 모았다. 자넬리제의 회고에 따르면 이 증언과 그루지야의 구체적 경험을 영화의 세부에 반영했다.
각본은 모스크바의 국가영화위원회 검열을 피하기 위해 그루지야 텔레비전의 자체 편성 시간과 예산을 이용해 제작하는 방식으로 승인을 얻었다. 그루지야 당 지도자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는 각본을 읽고 제작을 허용했으며, 그루지야 정부는 약 100만 루블을 배정했다. 제작진은 희생자들의 경험이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울 만큼 부조리하게 들린다고 판단해 사실주의 대신 그로테스크와 초현실주의적 환상극을 택했다. 영화는 1984년 12월 완성되어 그루지야 텔레비전에서 처음 방영됐으나 곧 상영이 중단됐다. 1987년 검열 완화 뒤 다시 공개되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