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페이 이바노비치 키르피치니코프

Тимофей Иванович Кирпичников
러시아 제국 제정·백색진영 러시아 러시아인 1892–1917/1918 ✕ 처형

제정군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 지도자

“노동자들에게 발포하겠는가? 나는 가지 않겠다.”

티모페이 키르피치니코프는 제정 러시아군의 하급지휘자였지만, 전선의 경험과 병사들 사이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명령의 정당성을 스스로 판단했다. 1917년 2월 26일 시위 진압 뒤 부하들에게 노동자에게 발포하지 말자고 설득하고, 다음 날 볼린스키 연대의 봉기를 이끌어 페트로그라드 수비대의 연쇄적인 가담을 촉발했다. 그는 임시정부에게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게오르기 십자훈장을 받았으나, 10월 이후에는 볼셰비키에 맞섰고 백군 내부의 처형으로 생을 마쳤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2월 봉기와 수비대의 확산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의 시위 진압에 동원된 볼린스키 연대 예비대대에서 키르피치니코프는 훈련대의 선임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전선에서 부상한 뒤 페트로그라드의 예비부대로 옮겨온 그는 병사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얻었지만, 엄격한 태도로 ‘몰드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따라 시위대 진압에 나선 날, 그의 회고에 따르면 병사들은 시위대 머리 위로 사격했다. 그날 밤 그는 소대장들과 이튿날 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먼저 병사들을 모으기로 논의했다. 27일 새벽 병사들을 집결시킨 그는 노동자들에게 발포하지 말라고 촉구했고, 훈련대는 상관의 지휘를 거부하며 봉기했다. 이후 키르피치니코프가 다른 부대들을 찾아가 합류를 이끌었고, 볼린스키 연대의 다른 병력과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 및 공병 부대의 예비대대들이 봉기에 가세했다. 몇 시간 사이 페트로그라드 수비대의 상당 부분이 반란군 편에 섰다. 임시정부는 그를 ‘차르 체제에 맞서 무기를 든 첫 병사’로 기리고 진급시켰으며, 1917년 4월 3일에는 보병 소위로 임관시켰다. 게오르기 십자훈장 수여 명령은 그가 2월 27일 병사들을 이끌고 경찰의 기관총을 빼앗은 일을 공적으로 들었다. 이는 군인들의 집단적 행동을 촉발한 그의 역할과 임시정부가 그 봉기를 새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한 방식을 함께 보여준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