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의 총애를 받은 인물은 포노마료프의 제1부부장 바딤 자글라딘이었다. 사냥 트로피를 선물받고, 공식 사진에서 항상 총비서 바로 뒤에 자리했다." — 경제학자 스타니슬라프 멘시코프
중앙위 국제부에서 24년, 그중 13년을 보리스 포노마료프 아래 제1부부장으로 지내며 서유럽 공산당을 상대한 소련의 핵심 창구였다. 유로코뮤니즘 시대에 미테랑, 브란트, 나폴리타노와 교류하며 사회민주주의에 수렴하는 개혁된 공산주의를 주창했고, 고르바초프 '신사고' 외교의 이론적 토대를 이반 프롤로프와 함께 개발했다.
경력 연표
- 1949–1952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MGIMO) 졸업 후 동 대학에서 교편
- 1954–1964《노보예 브레먀》 및 프라하 《평화와 사회주의의 문제들》 저널리스트
- 1964–1967중앙위 국제부 고문(콘술탄트)
- 1967–1975중앙위 국제부 부부장
- 1975–1988중앙위 국제부 제1부부장 — 포노마료프 아래 서유럽 공산당 관계 총괄
- 1988–1991미하일 고르바초프 고문
- 1992–2006고르바초프 재단 고문, 유럽대서양협력협회 부회장
관련 역사 사건
신사고와 세계문제 연구: 자글라딘의 이론적 기여
자글라딘은 국제부 실무자일 뿐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 외교의 이론적 설계자 중 한 명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철학자 이반 프롤로프와 공동으로 세계문제 연구를 주도했으며, 1981년 공저 『현대 세계문제: 과학적·사회적 측면』은 이 분야 소련 최초의 단행본으로서 핵전쟁 위기, 남북 격차, 생태 위기 등 문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순들을 마르크스주의 틀 안에서 분석했다. 자글라딘이 '사회정치적 측면'을, 프롤로프가 '철학적·과학적 정당화'를 맡는 분업으로, 두 사람은 세계문제가 계급투쟁보다 인류 보편의 이해를 우선시해야 할 시대를 열었다고 주장했다.
1986년 2월, 자글라딘은 철학 저널 《보프로시 필로소피》에 「세계적 모순」이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여 '상호의존성' 개념을 국제관계 분석의 중심에 놓았다. 이는 고르바초프가 같은 해 제27차 당대회에서 선언한 '상호의존적이고 통합적인 세계' 테제의 직접적 토대였다. 미 국무부는 당시 전문에서 "도브리닌과 자글라딘이 이 노선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으며, 자글라딘 본인도 미국 외교관에게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의 구상은 계급투쟁보다 인류 보편 가치의 우위, 군사력보다 정치적 수단에 의한 상호안보, 탈이데올로기적 국제협력을 골자로 했으며, 이는 곧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1987)로 집약되었다.
자글라딘은 소련 과학아카데미 세계문제 분과위원장으로서 연구소 간 논의를 조직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현대 세계문제』(1983), 『사회주의와 현대 세계문제』(1985) 등 주요 성과물을 편집했다. 그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로 급진적 내용을 포장하는 '이중언어' 전략을 구사했으며, 후일 "나는 과거에 대해 매우 유감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부끄럽다"(1999년 라디오 스보보다 인터뷰)고 회고했다. 그의 이론 작업은 소련 외교가 '악의 제국'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데탕트와 신뢰 구축으로 선회하는 지적 기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