Новое политическое мышление (Новое мышление) · 1985–1991

신사고

New Political Thinking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집권 후 제창하고 1987년 저서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 및 1988년 유엔 연설을 통해 체계화한 소련 외교정책의 근본적 전환 노선이다. 국제정치의 탈이데올로기화, 계급투쟁 개념의 포기, 전인류적 이익의 계급적 이익에 대한 우선, 세계의 상호의존성 증대, 군사적 수단보다 정치적 수단에 기초한 상호안보를 핵심으로 하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하고 동유럽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는 시나트라 독트린으로 이어졌다. 이 노선은 INF 조약 체결, 아프가니스탄 철군, 제3세계 공산운동 지원 중단을 가능케 했으며 냉전 종식의 직접적 동인이 되었으나, 보수파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소련 해체의 정치적 조건도 함께 형성했다.

상세

어디서 나온 생각인가?

신사고는 고르바초프 한 사람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 뿌리의 하나는 1956년 제20차 당대회다. 이때 소련공산당은 「전쟁은 숙명적으로 불가피하지 않다」라며 자본주의와의 전쟁 불가피론을 공식 폐기하고 평화공존 노선을 세웠다. 다만 이후 수십 년간 평화공존은 어디까지나 「계급투쟁의 한 형태」라는 단서를 달고 있었다. 경쟁은 계속하되 전쟁만 피한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 뿌리는 당 제도권 안의 두뇌집단이다.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와 미국캐나다연구소 같은 기관에서 아르바토프, 보빈, 체르냐예프, 샤흐나자로프 등 이른바 「계몽된 당료」 세대가 1960년대부터 서방을 실제로 연구하며 낡은 교리와 현실의 간극을 기록해 왔다. 이들이 훗날 고르바초프의 참모진이 된다. 세 번째 뿌리는 바깥에 있었다. 스웨덴 총리 팔메가 이끈 국제위원회의 「공동 안보」 개념(1982),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교류, 그리고 핵전쟁이 승자 없이 인류 문명을 끝낸다는 과학자들의 핵겨울 논쟁이다.

여기에 두 개의 경험이 촉매가 되었다. 6년째 수렁이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1986년 체르노빌 참사다. 방사능 구름이 국경을 무시하고 유럽으로 퍼지는 것을 보며, 「안보는 한 나라만의 것일 수 없다」라는 명제는 이론이 아니라 실감이 되었다.

무엇을 주장했는가?

신사고의 핵심 주장은 다섯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전인류적 가치의 우선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정통에서 국제정치는 계급투쟁의 연장이었다. 신사고는 핵시대에는 인류의 생존이라는 공동 이익이 어떤 계급의 이익보다 앞선다고 선언했다. 교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단절이다. 둘째, 상호안보다. 나의 안보를 상대의 공포 위에 쌓을 수 없으며, 상대가 불안하면 나도 결국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겨냥해 군비를 쌓는 악순환(안보 딜레마)을 정치적 신뢰로 끊자는 제안이었다. 셋째, 합리적 충분성이다. 군사력은 침공을 격퇴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면 되고, 그 이상은 낭비이자 도발이라는 군사 교리다. 넷째, 선택의 자유다. 모든 인민은 자기 체제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여기에는 사회주의를 떠날 권리도 포함된다는 것으로, 1988년 유엔 연설에서 공식화되었다. 다섯째, 상호의존이다. 세계 경제와 환경 문제는 진영을 갈라 풀 수 없으며, 인류는 한 배에 타고 있다는 인식이다.

기존 소련 외교 교리와 무엇이 달랐는가?

전후 소련 외교의 기둥은 세계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두 진영으로 갈라져 있다는 두 진영론이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진압 이후에는 이른바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더해졌다.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이익이 개별국의 주권보다 앞서므로, 어느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위협받으면 진영 전체가 개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제한주권론이다.

신사고는 이 기둥들을 하나씩 철거했다. 계급투쟁이라는 렌즈를 내려놓았고, 「선택의 자유」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했다. 1989년 동유럽이 흔들릴 때 소련 외무부 대변인 게라시모프는 이를 「시나트라 독트린」이라 불렀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 웨이」처럼, 각국이 저마다의 길을 가게 두겠다는 농담이었다. 농담의 형식을 빌렸지만 내용은 제국의 해산 선언이었다.

말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가?

1985년 제네바에서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핵전쟁에 승자는 없으며 결코 싸워서는 안 된다」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1986년 1월 고르바초프는 2000년까지의 단계적 핵무기 전폐를 제안했고, 그해 10월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전면 핵폐기 직전까지 갔다가 결렬되었지만 군축의 심리적 둑을 무너뜨렸다. 1987년 12월 INF 조약으로 사상 처음 핵무기 한 급(중거리 미사일)이 통째로 폐기되었다.

1988년 12월 7일 유엔 총회 연설은 신사고의 절정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일방 감군 50만과 동유럽 주둔 전차 1만 대 철수를 선언하며 「선택의 자유는 예외 없는 보편 원칙」이라 못박았다. 1989년 2월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끝났고, 그해 가을 동유럽 혁명 앞에서 소련군은 병영에 머물렀다. 12월 몰타 회담에서 냉전 종식이 확인되었고, 1990년 소련은 통일 독일의 나토 잔류까지 받아들였다. 1991년 7월에는 전략핵을 감축하는 START 조약이 서명되었다.

소련 안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처음에는 지지가 넓었다. 군비 부담을 덜어야 경제를 살린다는 논리는 당내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양보가 쌓이자 반발도 쌓였다. 군부는 일방 감축에 모욕감을 느꼈고, 참모총장 아흐로메예프는 1988년 유엔 연설과 같은 날 사임했다. 당내에서는 리가초프가 1988년 「국제관계의 계급적 성격」을 공개적으로 되세우며 노선에 반론을 폈다.

더 깊은 문제는 이념의 연쇄였다. 계급투쟁이 국제정치의 원리가 아니라면, 계급의 전위를 자처하는 당의 독재는 무엇으로 정당화되는가. 신사고는 외교 노선이면서 동시에 체제 정당성의 기둥을 건드린 내부 폭탄이었다. 동유럽이 떨어져 나가고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산되자, 강경파에게 신사고는 「전후 소련이 피로 얻은 모든 것의 무상 반납」으로 보였다. 이 원한은 1991년 8월 쿠데타의 심리적 배경이 되었다.

어떻게 평가되는가?

고르바초프 자신은 신사고를 사회주의의 포기가 아니라 레닌의 평화공존 사상으로의 복귀이자 발전으로 제시했고, 저서 『페레스트로이카』에서도 레닌을 그 전거로 들었다. 이것이 내재적 논리다. 학계의 평가는 크게 갈린다. 사상이 역사를 바꿨다는 쪽(로버트 잉글리시, 아치 브라운)은 경제 쇠퇴만으로는 후퇴의 「시점과 방식」, 곧 왜 하필 협상과 자발적 양보의 형태였는지를 설명할 수 없으며, 지도자와 참모진이 공유한 새로운 관념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반대쪽(브룩스와 월포스 등 현실주의자)은 신사고란 쇠퇴하는 국력이 강요한 감축에 입혀진 이념적 포장이었다고 본다.

논쟁은 「순진함」을 둘러싸고도 이어진다. 1990년 2월 미국 국무장관 베이커의 「나토 관할권은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되지 않는다」라는 구두 언급을 문서로 못박지 않은 일은, 훗날 나토 동진 논쟁과 러시아의 원한 서사의 소재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논의가 독일 통일 협상에 국한된 맥락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오늘의 러시아 공식 서사에서 신사고는 흔히 항복 외교로 소환되지만, 냉전이 대규모 전쟁 없이 끝난 데 이 노선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에는 어느 쪽도 크게 이견이 없다. 무엇을 지키지 못했는가와 무엇을 피했는가. 신사고의 평가는 이 두 질문 사이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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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Mikhail Gorbachev, Perestroika: New Thinking for Our Country and the World (1987)
  2. Anatoly Chernyaev, My Six Years with Gorbachev (2000)
  3. Robert D. English, Russia and the Idea of the West: Gorbachev, Intellectuals, and the End of the Cold War (2000)
  4. Archie Brown, The Human Factor: Gorbachev, Reagan, and Thatcher, and the End of the Cold War (2020)
  5. Stephen G. Brooks and William C. Wohlforth, Power, Globalization, and the End of the Cold War, International Security 25:3 (2000–01)
  6. Jack F. Matlock Jr., Reagan and Gorbachev: How the Cold War Ended (2004)
  7. Svetlana Savranskaya and Thomas Blanton (eds.), The Last Superpower Summits: Gorbachev, Reagan, and Bus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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