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노 이오시포비치 밸랴스

Vaino Väljas

1988년 6월 니카라과에서 소환되어 에스토니아 주권 선언을 이끈 공산당 제1서기

「우리 대의원들은 에스토니아가 소련 내에서 주권적이고 평등한 구성원으로 남기를 바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1988년 11월 주권 선언 직후

에스토니아 히우마섬 출신으로 1950년대부터 콤소몰과 당 기구에서 경력을 쌓아 1970년대에는 에스토니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까지 올랐다. 에스토니아 민족주의에 동정적이라는 이유로 1980년 모스크바에 의해 외교직으로 밀려나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 대사를 지냈다. 1988년 6월 16일 강경파 카를 바이노의 후임으로 소환되어 에스토니아공산당 제1서기가 되었고, 인민전선과 협력하며 그해 11월 에스토니아의 주권 선언을 이끌었다. 1991년 8월 에스토니아 독립 회복 선언에 찬성표를 던졌고, 독립 후에는 에스토니아 민주노동당 의장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주권 선언과 독립 회복으로의 이행

1988년 6월 에스토니아로 돌아온 밸랴스는 에스토니아공산당 제1서기가 되어 당의 재편을 이끌었다. 에스토니아 인민전선의 압력 속에서 그는 소련 내 에스토니아공화국의 주권을 강조하고, 같은 해 11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가 주권 선언을 채택하도록 이끌었다. 이 선언은 소련 중앙 권력에 대한 공화국의 정치적 자율성을 주장한 선례이자 완전한 독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한 단계였다. 다만 밸랴스의 지도력만으로 전환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에스토니아 사회의 대중운동과 공산당 내부의 분열도 그 정치적 변화의 맥락을 이루었다. 1990년 공산당이 분열한 뒤 그는 친에스토니아파를 이끌었고, 에스토니아가 독립을 회복한 1991년 8월 최고회의 의원으로서 독립에 찬성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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