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세묘노비치 그로스만

Василий Семёнович Гроссман
소련 러시아 1905–1964 ○ 자연사

전쟁의 현장과 전체주의의 거울을 쓴 작가

《삶과 운명》 원고 압수는 해빙기의 허용 범위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보여 준다.

제2차 세계대전기 《붉은 별》의 종군기자로 스탈린그라드·베를린 전선을 취재했다. 전후 소설 《삶과 운명》은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폭력을 나란히 바라보았고, 원고는 1961년 당국에 압수되어 해외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2년 가을, 스탈린그라드의 특파원

바실리 그로스만은 베르디체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화학기사로 돈바스 탄광에서 일하다 1930년대에 작가가 되었다. 1941년 전쟁이 터지자 그는 시력과 건강 문제로 후방에 남을 수 있었음에도 『크라스나야 즈베즈다(붉은 별)』의 종군기자를 자원했고, 이후 1,000일이 넘는 시간을 전선에서 보냈다. 1941년 9월 어머니 예카테리나가 독일 점령하의 베르디체프에서 학살당했다. 그는 이 죽음을 평생의 짐으로 지고 다녔고, 훗날 『삶과 운명』의 가장 유명한 장, 아들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에 그 짐을 옮겨 놓았다.

1942년 8월부터 그로스만은 스탈린그라드에 있었다. 볼가강을 건너 시가전의 한복판까지 들어가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와 체호프, 구르티예프 사단의 병사들을 취재했고, 참호에서 병사들과 같은 위험을 나눴기에 그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의 르포 「주공 방향」은 전선과 후방에서 두루 돌려 읽혔다. 스탈린그라드의 병사들이 무엇을 견뎌냈는가에 대한 가장 밀도 높은 기록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수첩에서 나왔다.

1944년 여름 붉은군대와 함께 폴란드에 들어간 그로스만은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 터에 도착해 생존자와 인근 주민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그해 11월 『즈나먀』에 실린 「트레블링카의 지옥」은 절멸수용소의 작동 방식을 재구성한 최초의 본격적인 보고 가운데 하나였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자료로 배포되었다. 파시즘의 실체를 세계에 알린 이 문서는 소비에트 종군 문학이 남긴 가장 무거운 업적에 속한다.

1961년 2월 14일, 원고의 체포

1960년 그로스만은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축으로 전쟁의 세기를 통째로 담은 대작 『삶과 운명』을 완성해 잡지 『즈나먀』에 투고했다. 편집장 코제브니코프는 원고를 당 기관에 넘겼고, 1961년 2월 14일 KGB 요원들이 그의 아파트에 찾아와 원고와 사본, 초고, 심지어 타자기 리본까지 압수해 갔다. 작가는 체포되지 않았다. 체포된 것은 책이었다.

그로스만은 흐루쇼프에게 「내 책에 자유를 달라」는 편지를 썼고, 1962년 이데올로기 담당 서기 수슬로프의 접견을 받았다. 그로스만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수슬로프는 이 책이 200~300년 안에는 출판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 세묜 립킨이 보관한 사본이 살아남았고, 훗날 보이노비치와 사하로프의 도움으로 마이크로필름이 국외로 반출되어 1980년 로잔에서 초판이 나왔다. 소련에서는 1988년 글라스노스트 시기에 출판되었다. 그로스만 자신은 그 어느 것도 보지 못한 채 1964년 9월 14일 위암으로 사망했다.

『삶과 운명』은 톨스토이적 서사 안에 스탈린그라드의 영웅성과 국가의 압제를 함께 담은 작품으로, 파시즘에 승리한 인민과 그 인민을 옥죈 관료제를 같은 화폭에 그렸다. 이 원고의 압수는 해빙기 문화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되며, 책의 귀환은 소련 사회가 자신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보기 시작한 글라스노스트의 상징적 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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