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원자력 행정의 조직자
첫 소련 원자탄의 이름을 정할 때 마흐뇨프는 'РД'(반응 엔진)에 이니셜 'С'를 덧붙여 'РДС', 곧 '스탈린의 반응 엔진'이 되게 했다고 전해진다.
바실리 마흐뇨프는 소비에트 국가의 통제·군수 행정가로서 전쟁기의 동원 체계와 전후 원자력 프로젝트를 잇는 실무자였다. 그는 1945년 GKO 결정 9887로 설치된 특별위원회의 9인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자 서기로, 위원회 장치를 운영하고 과학·산업 과제를 국가 행정으로 연결했다. 그의 역할은 과학자의 발견만으로는 추진될 수 없었던 소련 원자력 프로젝트가 비밀주의와 집중 동원 속에서 작동한 방식을 보여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53–1956 과학·기술 · 소련 · 과학 · 원자력 · 우주 개발
경력 연표
- 1926–1934노동자·농민 감독기관에서 근무
- 1934–1940소비에트 통제위원회 지역 전권대표
- 1940–1941소비에트 통제위원회 부위원장, 국가통제 인민위원부 인민위원 대리
- 1941–1945군수 인민위원부 인민위원 대리, GKO 위원 대리
- 1945–1953소련 각료회의 특별위원회 위원·서기
- 1953–1956중형기계공업부 과학기술정보·국제관계국장
- 1956–1965원자력 이용 국가위원회 과학기술정보·전시국장
관련 역사 사건
원자력 프로젝트의 행정과 시험 참여
1945년 8월 원자력 프로젝트의 지휘 구조를 세울 때 마흐뇨프는 소련 인민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 위원 겸 서기로 임명되었고, 기술위원회에도 참여했다. 특별위원회는 우라늄 채굴과 가공, 원자력 시설 건설, 원자폭탄 개발·생산 등 프로젝트 전반을 관장했다. 첫 회의에서 그는 제1총국에 사무실·장비·수송수단과 공급 자원을 제공하는 결의안 초안을 냈다. 1946년 1월에는 원자력 이용 작업 현황을 스탈린에게 보고하는 문서를 작성했다. 이 활동은 과학 연구를 자원 배분과 행정 조치로 연결한 그의 역할을 보여준다.
1949년 8월 29일 첫 소련 핵폭발이 이뤄진 세미팔라틴스크 시험장에서 마흐뇨프는 베리야와 퍼르부힌 등과 함께 시험 준비를 살폈고, 폭발 때 지휘소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시험에 직접 참여한 인물로 기록되며, 성공 뒤 1949년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