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쇼 재판의 판사, 스탈린의 '법적 단두대'
사형을 선고받은 에스토니아 변호사에게 울리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네 직업이 드디어 쓸모 있게 됐군!"
소련 최고재판소 군사합의부 의장(1926–1948)으로서 스탈린 시대 대숙청의 사법적 얼굴이었다. 라트비아 리가 출신으로, 독일계 발트인 혁명가 아버지와 러시아 귀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리가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1910년 볼셰비키에 입당했고, 1918년 체카에서 경력을 시작해 1926년 군사합의부 의장에 올랐다.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 투하쳅스키 등 구당 지도부에 대한 모스크바 쇼 재판(1936–1938)을 주재했고, 2년간 3만 명 이상의 사형 선고를 내린 기관을 지휘했다. 전후에는 블라소프, 크라스노프 등 나치 협력자 재판과 폴란드 지하국가 지도부 재판을 주재했다. 1948년 해임된 뒤 1951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26–1948 법률·사법 · 소련
경력 연표
- 1910RSDLP(볼셰비키) 입당
- 1914리가 공과대학 상업과 졸업
- 1915–1917러시아 제국군 공병대대 소위
- 1918–1919NKVD·체카 재무과장
- 1920공화국 혁명군사재판소 판사
- 1921–1926RSFSR 최고재판소 군사합의부 의장
- 1926–1948소련 최고재판소 군사합의부 의장
- 1935–1948소련 최고재판소 부의장
- 1948–1951군사법률아카데미 고등군사법률과정장
관련 역사 사건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군사재판소 판사1919년부터 혁명군사재판소 판사로 내전기 군사 재판을 맡았다. 뒤에 1930년대 대숙청 재판의 재판장이 되었다.
- 1928–19375개년 계획과 소련의 대전환최고재판소 부의장
- 1937–1938대숙청군사합의부 의장·쇼 재판 재판장소련 최고재판소 군사합의부 의장으로서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 투하쳅스키 등에 대한 모스크바 쇼 재판을 주재했고, 1937~1938년에만 3만 건 이상의 사형 선고를 내린 기관을 지휘했다. 정치국 직속으로 대숙청의 사법적 집행을 담당했다.
- 1944–1948폴란드: 루블린 위원회에서 통일노동자당까지폴란드 지하국가 지도자 재판 주재전후 폴란드 지하국가 지도자들의 재판을 주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