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표도로비치 그루슈코

Виктор Фёдорович Груш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0–2001 ○ 자연사

해외정보부터 방첩까지 아우른 KGB 작전부사령관

1991년 8월 18일 오후, 야조프 국방장관이 공수군 사령관 그라초프에게 크렘린의 쿠데타 계획을 실행하라 명령하면서 덧붙였다. "KGB 부의장 그루슈코·아게예프와 협조하라."

소련 KGB에서 해외정보(PGU)와 방첩(VGU) 양대 본부를 모두 지휘한 정보 장교. 타간로크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MGIMO를 졸업하고 노르웨이 주재 외교관으로 출발, 1960년 KGB로 전직한 후 오슬로 주재관을 거쳐 PGU 제3(영국·스칸디나비아)부장, PGU 제1부국장으로 승진했다. 1989년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체제에서 제2총국(방첩)을 맡으며 KGB 부의장이 되었고, 1991년 1월 KGB 제1부의장으로서 작전 부문 최고위직에 올랐다. 같은 해 8월 국가비상사태위원회(GKChP)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었고, 구금 중 두 차례 심장마비를 겪은 뒤 건강 악화로 석방되어 1994년 사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GKChP 시도와 구금

1991년 1월 KGB 제1부의장에 임명된 그루슈코는 8월 쿠데타 시도 당시 국가비상사태위원회(GKChP)에 참여한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위원장 휘하의 고위 간부였다. 8월 24일 GKChP 사건으로 체포되어 모스크바의 마트로스카야 티시나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28일 제1부의장직에서 해임되었다. 당시 보도는 그가 크류치코프와 함께 구금되었다고 전했다. 당국은 그를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사건으로 기소했으며, 1992년 1월 10일 건강 문제로 구금에서 풀려났다. 구치 중 심장마비를 두 차례 겪었다는 전기는 있으나, 공개된 보도는 상세한 구금 경위를 밝히지 않는다. 그는 1994년 러시아 국가두마의 사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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