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이바노비치 말체프

Виктор Иванович Мальцев
제정·백색진영 소련 러시아 1895–1946 ✕ 처형

소련 공군 대령에서 ROA 공군 사령관으로, 블라소프 운동의 항공전력 창설자

1941년 11월, 독일군이 점령한 얄타에서 붉은 공군 대령 정복 차림으로 독일 사령부에 모습을 드러내 볼셰비키와 싸우겠다고 말했다.

소련 공군 대령 출신으로, 1941년 독일군 점령 하의 얄타에서 투항하여 대소련 협력 진영으로 전향했다. 블라소프 휘하 러시아 해방군(ROA) 공군을 조직하고 KONR 공군 사령관(소장)으로서 약 5천 명 규모의 항공전력을 편성했으나, 실전에 투입되기도 전에 종전을 맞았다. 1938년 NKVD에 체포되어 고문당했으나 자백하지 않고 석방된 경험이 그를 반볼셰비키로 돌아서게 한 결정적 계기였으며, 수감 경험을 담은 『GPU 컨베이어』를 출간해 독일의 선전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후 미군에 의해 소련으로 송환되어 1946년 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항복과 송환: 항공부대의 마지막 행로

말체프의 항공부대는 블라소프 운동에서 가장 늦게 편성된 전력이었고, 붉은 군대와의 실전 공격 임무를 한 번도 수행하지 않은 채 종전을 맞았다. KONR 공군은 구조적으로 미완성인 부대들의 집합이었다. 1945년 봄까지 그 규모는 최대 5천 명에 이르렀고, 조종 인원과 장비를 갖춘 항공연대(항공기 40~45대), 대공포연대, 강하 낙하산 대대, 통신 중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항공연대의 지휘직은 망명 조종사들과, 함께 포로가 된 두 명의 소련 영웅 칭호 수훈자 세묜 비치코프와 브로니슬라프 안틸레프스키가 맡았고, KONR 공군 사령부는 마리안스케라즈네에 두어졌다. 종전 직전 ROA의 실질적 교전은 부냐첸코의 제1사단에 속했다. 이 사단은 1945년 4월 오데르에서 싸운 뒤 5월 프라하 봉기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무기를 돌렸다. 말체프의 항공부대는 그런 식으로 투입되지 않았고, 바로 그 점이 이후의 운명을 갈랐다.

1945년 4월 30일 그는 부하들과 함께 미 제3군 대표에게 항복했고, 독일과 프랑스(셰르부르)의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서방 연합국은 얄타 회담 조건에 따라 소련 시민을 송환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항복한 ROA 전투원 대부분은 붉은 군대에 직접 항복한 경우든 이후 연합국에 의해 인도된 경우든 강제로 소련에 송환되었다. 여기서도 공군은 예외였다. ROA 공군은 송환을 대체로 면한 유일한 부대였고, 이는 그 부대가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말체프 자신은 벗어나지 못했다. 1945년 8월 그는 소련군 사령부 대표에게 인도되었고, 목을 그어 중상을 입히는 자살 시도를 했다. 이후 모스크바 부티르카 교도소로 옮겨져 처음에는 교도소 병원에 수감된 채 사건 처리 절차를 기다렸다. 붉은 공군 대령 정복 차림으로 독일 사령부에 처음 나타났던 이 지휘관의 운명은 하늘이 아니라 모스크바 교도소의 심문실에서 판가름 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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