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그리고리예비치 나세트킨

Виктор Григорьевич Наседкин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05–1950 ○ 자연사

전시 굴라그를 지휘한 수용소 제국의 관리자

나세트킨은 1944년 8월 베리야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전쟁 3년간 GULAG 수감자 97만 5천 명을 붉은군대에 넘겼으며 '다섯 명의 전직 수감자가 소련 영웅 칭호를 받았다'고 적었다.

소련 국가보안기관 간부로, 1941년부터 1947년까지 GULAG(교정노동수용소 본부) 책임자를 지냈다. 교사의 아들로 헤르손에서 태어나 15세에 붉은군대에 입대했고 1921년부터 체카-OGPU-NKVD 체계에서 수송·경제 부문 요직을 거쳤다. 독소전쟁 발발 직후 전선 인근 수용소 27곳과 식민지 210곳, 수감자 75만 명을 후방으로 소개시켰으며, GULAG 수감자들을 군수 생산에 총동원했다. 전시 내내 수감자들을 '완전 노동 활용' 원칙 아래 혹사시키면서도 1944년 베리야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GULAG의 전쟁 기여를 상세히 기록했다. 1945년 국가보안 중장이 되었으나 전후 쇠락하여 1948년 예비역으로 밀려나고 1950년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체카 사무원에서 경제 부문 간부로, 1920~1941

나세트킨의 경력은 요직이 아니라 말단 사무직에서 시작되었다. 1920년 11월 붉은군대에 입대해 사령부 서기·필경으로 일하다 1921년 5월 체카 기관으로 옮겨, 여러 도로·수송 부서에서 문서 담당관으로 근무했다. 1931년 10월 모스크바주 OGPU 전권대표부 경제과로 옮겼다가 그해 안에 다시 철도 부문으로 돌아왔고, 1935년 8월 1일 국가보안총국(GUGB) 수송(훗날 6)부 과장 보좌에 임명되었다. 1937년 1월 전연방 공산당(볼셰비키)에 입당한 뒤 곧 과장이 되었고 1938년에는 부장 보좌로 올랐다. 이 상승은 대숙청으로 기관 인사가 대량 교체되던 시기와 겹친다.

1939년 나세트킨은 NKVD 수사부 부책임자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8월 7일 중앙경제관리국 부국장과 함께 연료 산업을 관할하는 6과장을 맡았다. 이는 그가 수용소 체계가 아니라 국가보안기관의 경제·수사 부문에서 먼저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수용소 행정과는 다른 이 경력 경로가 1941년 2월 GULAG 책임자 임명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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