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농업 후임자이자 마지막 내부 비판자
1989년 1월 정치국 회의에서 고르바초프에게 반박했다: "농업의 이런 조직 개편들에 지쳤습니다. 농업이 우선순위를 얻지 못하면 프로그램은 실패할 것입니다. 정말 이게 각료회의와 정치국, 그리고 당신, 미하일 세르게예비치에게 이해되지 않습니까?"
마리 자치공화국 제1서기를 12년(1967~1979) 역임한 농학자 출신 당 간부로, 1985년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오르자 농업 담당 중앙위 서기를 이어받았다. 안드로포프 시절 구상된 농업 부흥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고 6개 농업 부처를 통합한 국가농공위원회 창설을 지지했으나, 관료적 통합이 생산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후 정치국에서 수차례 고르바초프와 충돌했다. 1989년 9월 만 60세로 정치국과 서기국에서 동시 해임되었다.
경력 연표
- 1950–1958MTS 주임 농학자, 농업학교 교사, 크라스노야르스크 당 기관 근무
- 1961–1967타타르 주당 제2서기
- 1967–1979마리 주당 제1서기
- 1979–1983소유즈셀호즈히미야 의장 · 소련 농업차관
- 1983–1985러시아 공화국 농업장관
- 1985–1989중앙위 서기 (농업 담당)
- 1987–1989정치국 위원
관련 역사 사건
1988년 안드레예바 사건과 보수파 합류
1988년 3월 13일, 소비에트 관영지 《소비에츠카야 로시야》에 레닌그라드 화학 강사 니나 안드레예바의 「나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글이 실렸다. 스탈린을 옹호하고 페레스트로이카를 배신으로 규탄한 이 글은 페레스트로이카 반대파의 선언문으로 즉각 인식되었고, 제2서기 예고르 리가초프의 후원 아래 지역 신문들이 일제히 전재했다.
고르바초프와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가 해외 순방 중인 틈을 타 출판된 이 글을 놓고 3월 24~26일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 니코노프는 보로트니코프, 그로미코, 리가초프, 솔로멘체프, 체브리코프 등과 함께 안드레예바의 주장을 지지했다. 다수파였던 보수 진영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노선을 뒤집을 수 있었으나, 서기장직의 제도적 권위 앞에 실행에 나서지 못했다. 고르바초프가 귀국 후 정치국원 전원에게 공개 입장 표명을 요구하며 반격에 나서면서 결국 4월 5일 《프라우다》에 반박문이 실렸다.
이 사건은 니코노프의 정치적 궤적에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고르바초프의 농업 후임자로 1985년 중앙위 서기에 발탁되었던 그가 이념적 차원에서 이미 1988년 봄 개혁 반대 진영에 섰다는 사실은, 이후 1989년 농업 정책을 둘러싼 정치국 충돌과 해임이 단순한 부처 간 기술적 이견이 아니라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근본적 대립의 연장선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