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니콜라예비치 페펠랴예프

Виктор Николаевич Пепеляев

콜차크 독재를 설계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선 카데트 정치인

1919년 9월 22일,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녹스 장군이 내게 왔다. 처칠은 오직 최고 통치자만 지원하라고 훈령했다.」 붕괴 직전의 정권 내막을 기록한 총리의 목소리다.

제정 러시아의 카데트당 소속 두마 의원으로, 1918년 11월 옴스크에서 군사 쿠데타를 조직해 알렉산드르 콜차크를 '최고 통치자'로 추대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콜차크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거쳐 1919년 11월 각료회의 의장(총리)에 임명되어 붕괴 직전의 백색 정부를 이끌었고, 정권의 유일한 충성파 정치인으로서 최후까지 콜차크 곁에 남았다. 1920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의해 콜차크와 함께 이르쿠츠크 정치중앙에 넘겨졌고, 2월 7일 새벽 레닌의 직접 지시에 따라 재판 없이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옴스크 쿠데타와 콜차크 체제

1918년 8월 국민중심과 카데트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시베리아로 간 페펠랴예프는 11월 9일 옴스크에서 카데트 중앙위원회 동부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1월 15일 당 회의에서 그는 군사독재 수립을 주장했고, 18일 콜차크를 최고 통치자로 세운 사건에 참여했다. 이 사건을 둘러싼 당대 설명은 엇갈렸다.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전달한 옴스크발 보고는 군 장교들이 전직 지도부 인사들을 독자적으로 체포한 뒤 각료회의가 콜차크에게 최고권력을 부여했다고 전했다. 페펠랴예프의 개인적 역할을 이 보고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는 새 정부에서 경찰국장을 맡았고 당대 이후 기록은 그를 백색 테러의 주요 집행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1918년 12월 카데트당을 떠난 뒤 내무 행정의 고위직을 맡았고, 1919년 11월 각료회의 의장에 임명되었다. 이 경력은 그가 단순히 콜차크를 지지한 인물이 아니라, 군사독재의 수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그 정권의 강제기구 및 정부 운영에 참여한 정치인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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