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게오르기예비치 크노린

Вильгельм Георгиевич Кнорин
소련 라트비아 1890–1938 ✕ 처형

코민테른 선전기구의 설계자이자 당사(黨史) 편찬자

«벨라루스인은 민족이 아니며, 그들을 러시아인과 구분짓는 민족지적 특성은 사라져야 한다» — 1918년 10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즈뱌즈다』 지면을 통해.

라트비아 출신 볼셰비키로, 벨라루스와 라트비아에서 당 조직을 건설했으며 1920년대 벨라루스 공산당 제1서기를 두 차례 역임했다. 코민테른 정보선전부장으로서 각국 공산당의 이념 노선을 조율했고, 역사-당 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1935년 『소련 공산당 약사』를 저술했다. 이는 1938년 『볼셰비키당사 단기강좌』의 직접적 전신이다. 1937년 체포되어 이듬해 처형되었고 1955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당사(黨史) 편찬과 『단기강좌』의 전사

1931년 스탈린은 잡지 『프롤레타르스카야 레볼류치야』에 보낸 편지를 통해 당 역사가들의 지나친 스콜라주의를 질책하고, 레닌의 역할을 정당하게 부각하지 못하는 기존 당사 서술을 근본적으로 쇄신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개입으로 촉발된 새로운 당사 교과서 편찬 사업에서 크노린은 야로슬랍스키, 포스펠로프와 함께 핵심 집필진으로 지목되었다.

크노린은 1932년부터 1935년까지 역사-당 연구소(적색교수양성소) 소장을 맡으며 1935년 『소련 공산당 약사』를 출간했다. 그러나 스탈린이 요구한 대중적·동원적 서사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역사방법론 사이에서 크노린을 비롯한 구세대 역사가들은 끝내 만족스러운 원고를 제출하지 못했다. 1937년 초, 대숙청이 본격화되자 스탈린은 2-3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원들의 낮은 경계심이 당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개정 작업을 다시 독촉했다. 크노린은 야로슬랍스키, 포스펠로프와 함께 새로운 집필단에 편성되어 초·중급용 교과서 초안 작업에 착수했으나, 1937년 6월 22일 체포되면서 이 작업에서 배제되었다.

크노린이 체포된 후 야로슬랍스키와 포스펠로프는 수차례의 전면적 재집필을 거쳐 1938년 9월 『볼셰비키당사 단기강좌』를 완성했다. 이 교과서는 1956년까지 소련 전역에서 4천만 부 이상 발행되었으며, 스탈린 시대 정전(正典)의 중핵이 되었다. 크노린의 1935년 저작은 그 직접적 전신이었으나, 정작 저자 자신은 '인민의 적'으로 몰려 완성된 『단기강좌』에서 그 이름이 철저히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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