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파블로비치 안토노프-사라톱스키

Владимир Павлович Антонов-Саратовский
소련 러시아 1884–1965 ○ 자연사

1902년 입당한 볼셰비키 법률가이자 소비에트 법제의 설계자

1917년 10월, 사라토프 소비에트 의장으로서 시내 음악원에서 소비에트 권력 수립을 선포하고 적위대를 지휘했다.

1902년 RSDLP에 입당한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법률가로, 1917년 사라토프 소비에트 의장으로 소비에트 권력 수립을 주도했고 1920~1921년 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을 지냈다. 1923년부터 1938년까지 소련 인민위원회 산하 입법제안위원회 의장과 대법원 판사를 겸하며 소비에트 사법·입법 체계의 기초를 설계했고, 샤흐티 재판·멘셰비키 재판·산업당 재판에 판사로 참여했다. 회고록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깃발 아래』(1925)와 『붉은 해』(1927)를 남겼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0년 특별정착촌 법제화 위원회

1930년 6월, 소련 인민위원회 산하 준비위원회는 OGPU의 요청으로 안토노프-사라톱스키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밀 위원회를 구성하여 '특별정착촌(спецпоселки)'(쿨라크로 분류되어 집단화 지역에서 추방된 농민과 그 가족들을 수용할 정착촌)의 법적 체계를 마련하게 했다. 위원회에는 OGPU, NKVD, 소련 인민위원회 대표들이 참여했으며, 1930년 6월 13일 첫 회의에서 정착촌 규모(최대 300호, 전면 집단화 지역 50호), 리크(райисполком)를 통한 관리 체계, 주민의 정치권 박탈 및 이동 제한, 운영 비용의 주민 자체 부담 원칙 등을 결정했다. 6월 18일 두 번째 회의에서는 NKVD 초안을 대폭 수정해 50개 조항에 걸친 수정안을 확정했고, 이 초안은 7월 「특별정착촌에 관한 중앙집행위원회 및 인민위원회 결의」의 기초가 되었다. 안토노프-사라톱스키 위원회가 설계한 이 법적 틀은 향후 10년간 소련 전역에 형성된 수천 개의 특별정착촌을 규율하는 행정적 골격이 되었으며, 탈주 시 교정노동수용소 송치 조항 등 강제 노동 체계와 직결되는 징벌적 장치를 포함했다. 위원회의 작업은 OGPU가 주도한 대규모 강제 이주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동시에, 정착촌을 국가의 노동력으로 조직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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