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정부 기구를 설계하고 종교적 반대자들을 연구한 혁명가
1917년 10월, 스몰니에서 물러난 레닌을 자기 아파트에 재웠다. 현관문에 사슬과 자물쇠를 모두 채우고 장전한 리볼버 두 정을 곁에 둔 채, 그는 레닌이 잠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밤새 소파에서 졸았다. 그러나 레닌은 자는 척하던 그를 피해 살며시 일어나 책상에 앉았고, 날이 샐 무렵 유명한 토지에 관한 포고령 초고를 주머니에서 꺼내 낭독했다. 본치-브루예비치는 "사회주의 혁명의 첫날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로 아침을 열었다.
레닌의 사실상 개인비서이자 초대 인민위원회 사무국장(1917~20)으로서 소비에트 행정기구의 기초를 닦았다. 러시아 종파운동의 민족지학자로서 1919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합법화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경력 연표
- 1883–1892콘스탄티노프 측량학교 입학, 학생운동으로 제적 후 쿠르스크 측량학교 졸업
- 1895–1903RSDLP 입당, 모스크바 노동자동맹 활동, 1896년 스위스 망명, 「이스크라」 협력, 두호보르 교도 캐나다 이주 조직
- 1903–1905RSDLP 중앙위원회 원정대 책임자(제네바), 당 중앙기록보관소 설립 참여
- 1905–1912러시아 귀환, 「노바야 지즌」·「나샤 미슬」 편집, 1908년부터 출판사 「지즌 이 즈나니예」 경영, 1912년 「프라우다」 편집위원
- 1917.3–10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 스몰니-타브리다 구역 사령관
- 1917–1920인민위원회의 사무국장(우프라블랴유쉬치 델라미) — 소비에트 행정기구 구축, 수도를 모스크바로 이전 집행
- 1919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면제에 관한 법령 초안 주도
- 1920–1929과학·저술 활동 전념, 모스크바 근교 실험 국영농장 「레스니예 폴랴니」 운영
- 1933–1945국립문학박물관 창설·초대 관장
- 1945–1955소련 과학아카데미 종교·무신론사 박물관 관장
관련 역사 사건
두호보르 교도 캐나다 이주와 『두호보르인의 생명의 서』
본치-브루예비치는 1890년대 후반 레프 톨스토이,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와 협력하여 박해받던 평화주의 종파 두호보르 교도의 캐나다 이주를 조직했다. 그는 1899년 두호보르 교도들과 함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으며, 캐나다에 도착한 뒤 약 1년간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 체류 기간 동안 본치-브루예비치는 이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구전으로 전승되던 두호보르 '시편'(찬송가)을 방대하게 기록했다. 이 노동의 결실은 190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두호보르인의 생명의 서』(Животная книга духоборцев)로 출판되었다. 이는 성문화된 성서 없이 구전 전통만으로 신앙을 이어온 두호보르 공동체의 영적 유산을 최초로 문자로 정착시킨 민족지학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의 두호보르 연구는 이후 러시아 종파운동에 대한 평생의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1901년에는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나자렌파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고, 1904년에는 종파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민주주의 계몽 잡지 『라스베트』(Рассвет)를 제네바에서 발행했다. 종파운동에 대한 그의 전문성은 1917년 혁명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합법화한 1919년 1월 4일 인민위원회 법령의 초안을 주도하는 실질적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