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시대 16년간 중공업·에너지를 총괄한 당 서기
노릴스크 콤비나트 사장 시절, 국가 광물매장량 심의위원회의 결론을 기다리지 않고 탈나흐 광구 우안에 산업 건설을 강행했다. '노릴스크는 그 규모에 충격적이었습니다: 탄광, 지하 갱도, 거대한 노천광 두 개, 세 개의 공장 — 니켈, 코발트, 구리, 그리고 거대한 도시.' 광구 '마야크'는 1965년 첫 광석을 냈다.
야금기술자 출신으로 노릴스크 콤비나트 사장 시절 탈나흐 광상을 과감히 개발해 소련 니켈·백금 생산을 비약시켰고, 36세에 사회주의노동영웅을 받았다. 1972년 중앙위 서기로 발탁된 뒤 16년간 중공업·에너지 부문을 총괄하며 서시베리아 유전 개발과 소련 연료-에너지 복합체의 골격을 설계했다. 정치국 후보위원(1982–1988)으로서 브레즈네프 체제 후기 경제정책의 실무를 관장했으며, 페레스트로이카 개시 3년 뒤인 1988년 전원 퇴진 속에 은퇴했다. 소련 붕괴 후에도 모스크바 시의원·연방평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95세까지 공적 생애를 이어갔다.
경력 연표
- 1941–1944붉은군대 자원입대, 모스크바 방어·브랸스크 전선에서 중상 후 제대
- 1949–1958크라스노야르스크 정련공장 기술자·주임기사, 귀금속 제련 특허 다수
- 1962–1969노릴스크 광산·야금 콤비나트 사장, 탈나흐 광상 개발로 생산 10배 증대
- 1969–1972크라스노야르스크 변경주 당 제1서기, 지역 종합개발 계획 수립
- 1972–1988중앙위 서기, 중공업·에너지 담당 — 서시베리아 유전·연료복합체 총괄
- 1976–1984중공업·에너지부장 겸임
- 1982–1988정치국 후보위원
- 2011–2018국가두마 의원 → 연방평의회 의원
관련 역사 사건
서시베리아 석유·가스 복합체의 설계자
돌기흐가 1972년 중앙위 서기로 발탁된 뒤 16년간 가장 큰 공을 들인 사업은 서시베리아 석유·가스 복합체의 건설이었다. 그가 관할한 중공업·에너지 부문에는 지질탐사, 석유·가스 산업, 석탄, 전력, 철도·수상 운송은 물론 석유·가스 건설까지 포함되었고, 이 모든 부문의 역량이 튜멘 지역으로 집중되었다. 돌기흐 자신은 훗날 "튜멘에서 이뤄낸 것은 위대한 승리, 최초의 우주비행과 같은 우리의 국민적 자부심"이라 회고했다.
돌기흐는 집무실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을 직접 챙겼다. "16년 동안 튜멘에 간 횟수만 따져도 우크라이나·쿠르스크·카라간다·쿠즈네츠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그가 참여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는 1980년 3월 20일의 중앙위·각료회의 합동 결정 제241호였다. 돌기흐가 이끄는 당-정부 위원회가 작성한 이 결정은 「서시베리아 석유·가스 복합체 지역 건설 강화를 위한 긴급 조치」로서, 민네프테가즈스트로이 외에 7개 공화국과 모스크바·레닌그라드의 건설 조직까지 총동원해 수르구트·니즈네바르톱스크·네프테유간스크의 주택 건설을 대폭 늘리고 코갈림·란게파스·노야브리스크 같은 신도시 착공의 근거가 되었다. 이 조치로 튜멘 지역의 연간 포장도로 건설량은 1,000km에 달했다.
돌기흐의 시베리아 경험은 크라스노야르스크 변경주 제1서기 시절(1969~1972)에 이미 축적된 것이었다. 그가 입안한 '크라스노야르스크 10개년 계획'은 지역 원자재의 완전 가공 사이클(크라스노야르스크 수력발전소 → 아친스크 알루미나 콤비나트 → 크라스노야르스크 알루미늄 공장 → 크라스노야르스크 금속공장)을 구축해 시베리아 산업화의 모범으로 평가받았다. 이 지역 개발 모델은 이후 튜멘의 석유·가스 복합체 설계에 직접 이식되었다. 돌기흐 퇴임 후에도 그가 구축한 연료-에너지 복합체는 소련 붕괴를 넘겨 오늘날 러시아 경제의 근간으로 작동하고 있다.